Where are you? (Festival Bo:m Review)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27 April 2012 / Seoul*
*published in SPACE Magazine*

작가는 화자로서 이야기 세계의 내부에 있기도 하고 외부에 존재하기도 한다. 관객 또한 작품의 내부로, 외부로 시점을 이동하며 작품을 구성하거나 재구성한다. 누구의 시점이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는가, 누가 규칙을 만들고 있는가, 어떻게 그 세계에 참여하고 있는가. 작품의 경계 안팎에서 긴장감이 생성된다. 마치 수많은 거울이 그려진 회화를 보는 것과 같다. 그림을 보는 자들의 시선을 반사하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는 자의 얼굴을 비추기도 하는 거울을. 작가들은 계속해서 묻는다. 당신은 이 극에서 어떤 위치인가. 관객은 각자 공간을 점유하는 것으로 그 질문에 답한다. 3월 22일부터 4월 18일까지 개최된 는 현대예술의 장르적 경계를 넘나들며 의미 있는 양상들을 보여주었다.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게 뭐죠? 개막작 르네 폴레슈의 ‘현혹의 사회적 맥락이여,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에서 배우 파비안 힌리히스는 치약을 묻힌 전동칫솔을 관객에게 들이대며 묻는다. 이게 당신이 경험하고 싶은 것인가요? 그는 ‘수십 년간 우리를 테러해온 상호작용적 연극’을 ‘혐오스런 사교의 예술 형식’이라고 선언한다. 있지도 않은 의미를 끊임없이 공유하고 소통하라는데, 대체 자신과 같은 백인 남성 이성애자와 뭘 공유할 수 있겠느냐고 되묻는다. 그는 옷을 훌훌 벗어던지면서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노래 부르고 스프레이를 뿌리고 탁구를 치면서 계속해서 우리를 자극한다. ‘사회를 의미 공동체로 간주하다니!’ 우리는 정말 그의 말대로 상호작용적 예술에서 허상의 공동체를 찾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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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e Pollesch, Here’s Looking at You, Social Context of Delusion! (Image courtesy of Festival Bom)

당신이 원하는 곳에 서보세요. 5일간 두 시간씩 용산역 대합실을 무대로 삼았던 마리아노 펜소티의 ‘가끔은 널 볼 수 있는 것 같아’는 사람들이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자리에서 실시간으로 이야기가 발생되는 순간을 다루었다. 소설가 김연수, 시인 강정, 기자 하어영,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등 네 작가는 각기 다른 필체로 대합실을 오가는 사람들에 대한 허구적 이야기를 네 개 스크린에 띄웠다. 관객들 역시 각자가 원하는 위치에 은닉함으로써 작품 안에서 그들의 위치를 설정했다. 그들은 지나가는 행인인 척하는 배우일 수도 있고, 다른 관객-배우들을 바라보는 관객이나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읽는 독자가 될 수 있다. 직접 등장인물이 되려면 네 명의 작가 앞에 자리를 잡거나 어슬렁거리면 된다. 그러다 이 텍스트의 밖으로 나가고 싶다면 다행스럽게도 완전히 숨어 있지 않은 작가들의 시선을 피하면 된다. 작가들의 목적은 사람들을 도촬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맥락 속에 그들을 해석해 가져다 놓는 것이다. 공연이 진행되는 도중 용산역 역무원들이 스크린 앞으로 끼어들었다. 연출자 펜소티와 기념촬영을 하며 경직된 자세로 공적인 대화를 하는 그 장면을 작가 김연수는 상상 속의 ‘청춘 열차’에 대한 자막으로 대체해버렸다. “우리 역은 청춘 티켓을 발매합니다.” 이야기가 된 현실은 역 공간을 무대로 변화시키고, 지나치던 사람들은 머무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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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ano Pensotti, Sometimes I think, I can see you

사람들이 점유하는 자리는 곧 그들의 입장이 될 수 있다. 모두가 같은 견해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같은 자리를 공유하는 동안에는 유목적인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4월 6일, 종로에서 시청까지 이어진 김지선의 ‘웰-스틸링’에서 관객들은 작가가 제작한 ‘투명인간 후드티’의 성능을 실험하기 위해 경찰 군집을 찾아 광장으로 함께 걸었다. ‘투명인간,’ ‘못 본 척해줘’라고 앞뒤에 박힌 로고에는 ‘점령(occupy)’ 기능이 있었고, 관객 집단의 목적은 경찰 대신 광장을 점유해보는 것이었다. 거리로 나선 순간 작가는 관객 집단 속에 묻혀 버렸고, 관객 집단은 두려우면서도 매력적인 여정을 떠났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들은 텅 빈 서울광장을 마주하게 되고, 선거 투표 독려 콘서트를 준비하던 공연 관계자에 의해 그곳에서 쫓겨났다. 상황을 맞닥뜨린 모두의 생각이 다양한 만큼 작품의 의미는 결정되지 않고, 유목적 공동체는 광장 밖에서 해산된다. 비록 ‘투명인간 후드티’의 기능은 실패한 것이었지만 대신 연대의식이라는 효과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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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Jisun, Well-stealing

관객석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서 유동한다. 현시원의 ‘천수마트 2층’은 극장이라는 폐쇄적인 장소에 끊임없이 외부의 공간을 침투시킨다. 미술관에서 온 작품 해설사는 무대 위에 설치된 조성린 작가의 작품과 그것을 이차적으로 해석한 박길종 작가의 장치들을 하나하나 설명한다. 원근법을 따르지 않는 조성린의 작품은 한복 차림의 말 탄 이들과 UFO가 한 장면에 존재한다. 그런데 해설사를 제외하면 사실 극장의 그 어떤 자리에서도 작품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관객석에 근접해 있는 작품들도 조명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관객석의 의미는 무엇인가. 관객들은 작품을 설명하는 언어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작품 해설사는 자꾸만 자신이 일하는 덕수궁미술관을, 조성린의 작업실이 있는 천수마트 2층을, 박길종의 이태원 길종상가의 공간을 이야기 속에서 소환한다. 관객들은 연출자의 기억으로부터 묘사되는 천수마트 2층을 상상하며 재구성하고, ‘천수마트 2층’의 극적 공간은 극장 외부를 향하게 된다. 관객석은 현실과 극장의 경계선에서 발생한다. 발생하는 공간으로서의 관객석에서는 각자가 점유한 위치에서 이야기를 찾아내고 구성하며, 개방된 공공 영역으로 침투하고 사건을 만들어낸다.

*페스티벌 봄 Festival Bo:m /
2012.2.26~3.22 /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외*

글 김영주(독립기획자) ㅣ사진제공 페스티벌 봄

월간SPCAE 2012년 5월호 (5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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