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ramics Commune Exhibition Review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세라믹스 코뮌

*20 March 2012 / Seoul*
*published in SPACE Magazine*

수천 년 동안 도예가들은 개별 작가이자 작업공동체의 일원이었다. 점토를 혼합해 형태를 만들고 건조한 후 불로 구워내는 제조 과정은 단계별 분업과 협력을 필요로 한다. 도요지들은 각각의 특성을 갖게 되었고, 가마터 주변에 촌락 공동체도 형성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동체의 정체성은 후대로 이어지기도 했다. 예술공예사에서 볼 수 있었던 이러한 공동체적 성격은 점차 약화되어왔고, 현대에는 개별적인 작업장과 담론이 공존한다. 하지만 창작자의 경계가 확장되고 공동 창작의 형태를 다양하게 모색하는 디지털미디어 문화에서 창작자들과 공동체의 관계 혹은 창작자들의 공동체는 여전히 중요한 화두다. 우리에게 가능한 공동체는 무엇이고,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전은 그것을 도자 역사의 문화적 기억으로부터 짚어보자고 제안한다. 전시장에는 넓은 범주의 세라믹 작품들이 산재하고 그들 모두는 어떤 식으로든 ‘코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이 손으로 만지는 모든 재료 중에서 흙은 가장 친숙한 것이다. 흙에 물을 섞어 걸쭉한 반죽을 만든 다음 햇빛 아래서 흙과자를 구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흙덩이를 주무르고 뭉개면서 반죽하던 감각의 본능적인 쾌감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떼었다 붙였다 무너뜨리고 다시 세울 수 있는 점토의 유연한 물질성은 미술의 역사에서 가장 소외되어온 사람들을 포괄한다. 엄정순과 ‘우리들의 눈’이 시각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함께하는 ‘장님 코끼리 만들기 프로젝트’는 손으로 대상을 인지한 후 재현하는 작업을 해왔다. 김우진(대전맹학교 초등5)의 ‘코끼리를 만져본 순서대로’(2010)는 촉각적 인식의 결과물로서 시각을 가진 자들이 볼 수 없던 세계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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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Woojin., In order of touching the elephant (Another Way of Seeing Project)

손으로 빚은 형상들이 불 속으로 들어가고 그로부터 세라믹스가 탄생하는 것은 마법 같은 순간이다. 먼 옛날, 사람들은 불길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순간을 목격하며 함께 제의를 올렸을 것이다. 앰버 진스버그와 조셉 마드리갈의 ‘K[ne(e){a}d] Project’(2011)에서 참여자들은 작가와 함께 각종 곡물 가루와 건포도, 소금 따위를 넣은 밀가루를 반죽한다. 그런 후 반죽 덩어리들을 신체 부위를 캐스팅해서 만든 테라코타 몰드에 넣고 굽는다. 완성된 빵에는 ‘노동 85g, 두려움 1g, 경험주의 10g, 자신감 22g’ 따위의 영양 성분이 들어 있다. 참여자 모두는 신체 형상을 한 빵을 나누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불의 열기로부터 단절되는 현대식 가마가 아닌 마력의 불꽃이 넘실대는 불길 앞에서 기다렸다면, 그 모든 상황이 더욱 제의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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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ber Ginburg & Joseph Madrigal, K[ne(e){a}d] Project, Opening performance at Artsonje Center, 2012

반면 불을 견뎌낸 무거움에서 탈피한 작품들도 있다. 신미경의 비누로 만든 도자기들(‘Ghost Series’, 2010)은 단단하지 않다. 금이 간 플라스틱 장난감 위에 올려놓은 세라믹 책을 비롯해 차갑고 가벼운 일상 용품과 접합된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의 오브제들(‘Some days it’s just not worth getting of the toilet’, 2012)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보존되거나 먼 훗날 출토되는 것을 거부하며, 운송 박스나 조립식 티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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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 Meekyoung., Ghost Series (Black), Soap, Variable Installation (17 pieces), 2010

불을 통해 전혀 새로운 생명력을 갖게 되는 결과물을 얻는 과정은 일종의 연금술이다. 실제로 동양의 도자에 매혹되었던 유럽에서 최초로 중국식 자기를 구워내는 데 성공한 곳은 어느 연금술사의 실험실이었다. 도예가들은 자신의 손을 떠나 가마에서 다음 생명체의 단계로 도약한 오브제들을 평가했고, 때로는 바닥에 던져 깨버리기도 했다. 이 파기의 행위는 일종의 의식으로, 파기인 동시에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내포한다. 깨진 도자 파편들을 이어 붙여 새로운 형태를 만든 이수경의 ‘번역된 도자기’(2011)는 다각화된 시점을 통한 해석의 가능성을 표현한다. 작가와 오브제, 오브제를 받아들이는 외부 세계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의식은 장 피에르 레이노의 ‘나의 집’(1969-1993)에서 잘 드러난다. 작가는 자신의 삶의 방식이 변화하는 것처럼 23년 간 ‘나의 집’을 변형시켰다. 집의 변형 과정은 작가 자신의 우주를 바라보는 시선, 외부 세상을 대하는 자신만의 방식, 그리고 다시 세상의 시선에 대한 반응을 표현한 것이었다. 15×15cm 크기의 하얀색 타일이 집 안 전체를 뒤덮으면서 ‘나의 집’은 커다란 도약의 단계를 거친다. 거울 대신에 하얀 타일이 가득한 그곳은 자아성찰의 구역이고 정신의 공간이다. 때문에 사람들이 ‘나의 집’이 예술작품으로서 가지는 심미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작가는 그 집을 부수어버린 후 깨진 집의 파편들을 재구성해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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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 Pierre Raynaud, la maison

작품마다 제각각 다양한 크기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전시를 본 후에는 정작 ‘세라믹스 코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끼게 된다. 어떤 이야기는 서로 이어지고 어떤 것은 연결선이 보이지 않는다. 이 탐색의 과정 끝에 앰버 진스버그와 조셉 마드리갈의 또 다른 작업 ‘FLO(we){u}R Project’가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미국에서 밀가루로 채워진 테라코타 폭탄을 테스트용으로 제조했다고 하는데, 이 폭탄이 터진 지점은 밀가루로 인해 하얗게 표시되었다고 한다. 작가들은 설계도를 따라 만든 폭탄 속에 밀가루 대신 각종 씨앗을 채웠다. 그 폭탄이 터진 지점에는 각양각색의 꽃들이 자라게 될 것이다. 길 위에 점토를 대고 두드려서 떠낸 최지만의 ‘길 위의 표정’(2011)처럼 계속 걸어가면서 발견되는 각각의 모습처럼 말이다. ‘세라믹스 코뮌’은 이렇게 이질적인 것들이 모여서 인간과 사물, 환경의 관계망을 생성하는 과정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 길에서 우리는 컨비비얼리티(conviviality)를 갖고 생기 있게 공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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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ber Ginburg & Joseph Madrigal, FLO(we){u}R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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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i, Jiman., Faces on the Road, Clay for ceramics, Video, 260×156×4cm, 2011

*세라믹스 코뮌
2012.01.21~02.26 / 아트선재센터, 우리들의 눈 갤러리, 스페이스 제로*

글 김영주 독립기획자

월간SPACE 2012년 3월호 (5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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