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방법들

대화의 방법들 

2021년의 작업에 대한 기록

Dec. 2021.

<그래비티 샤워> (기획 유지원) 수록

김영주 (룹앤테일 게임디자이너) 

지난 2년동안 일에 관련된 것을 제외하고 내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사람은 꽃집 언니다. 전화 통화나 메시지로 일상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에 익숙해질 수 없는 나 같은 사람이 외출을 거의 하지 못했던 기간동안 새로운 친구를 만들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우리의 대화 주제는 식물의 상태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뿌리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식물들의 상태는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이파리 하나가 색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든가 반점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가 식물을 죽일뻔한 적이 많았다. 겉흙을 만져보고 속흙도 찔러보고 전체적인 식물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잡아내기 위해 자리를 계속 옮겨본다. 

휘커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매달 잎사귀를 하나씩 떨굴 때마다 꽃집을 응급실처럼 드나들었다. 꽃집 언니와 나는 빛의 세기나 습도, 환풍 같은 요소들을 하나하나 테스트해보면서 서로가 파악한 정보를 공유했다. 휘커스를 안고 문을 나서는 나에게 꽃집 언니는 당분간 그냥 지켜봐달라고 부탁했다. 지켜본다라는 것은 무언가를 해주고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것을 포함한다. 휘커스가 5개월 만에 갑자기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큼지막한 새 잎을 다섯 개나 달고 있는 사진을 보고 꽃집 언니는 몹시 기뻐했다. 

몇 개월 전부터 꽃집 언니는 나에게 식물을 하나씩 주면서 같이 키워보자고 제안했다. 꽃집에 자주 드나들며 식물의 상태를 서로 공유하는 일련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는 주기적인 모임도 없고 이름도 없는 이 집단에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레벨업을 한 기분이었다. 매주 새로운 종이 꽃집에 들어오고 일부는 소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집으로 간다. 한 장소에 모인 적 없는 사람들이 가진 정보는 꽃집으로 모인다. 유칼립투스 화분을 열 두 개 놓을 수 있는 사람과 나는 다른 환경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각기 다른 종을 데려가고 왜 칼라디움이 유독 우리집에서 잘 자라는지에 대해 분석한다. 이 소집단의 사람들은 이름도 모르고 서로를 부르는 호칭도 없지만 식물들에 대한 정보 공유 속에 각자의 일상이나 과거에 대한 이야기들이 스며든다. 조언과 더불어 위로와 격려가 오고가는 이 집단은 구성원들의 정확한 정보 없이 일시적으로 모였다가 다시 흩어진다. 

정기적인 모임에 대한 부담이 있는 상황에서 워크숍을 기획하면서 나는 온라인에서 익명의 사람들이 대화를 주고받을 때 나오는 자유로움과 긴장감, 그리고 그들이 위치하는 현실 공간에서의 안정감을 어떻게 이용해볼지 생각했다. 이름도 나이도 얼굴도 모르는 낯선 여성들이 모여서 각자가 각자의 공간에서 가지고 있을 우울함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워크숍을 시작할 때 신청자들에게 구글독스 링크가 전달되었다. “익명의 가마우지”와 같은 이름으로 구글독스에 접속한 사람들은 완전히 비어있는 새하얀 페이지에 거리낌없이 흔적을 남겨주었다. 누가 어떤 글을 썼는지 모르고 한 사람이 문장을 채 끝맺기도 전에 다른 사람이 그 문장을 이어가기도 한다. 개별적인 이야기들은 각기 너무나 달랐는데 그것이 하나의 줄기가 되어서 흘러갔을 때 우울함의 다양한 이유와 양상들 아래에 공통적으로 깔려있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하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개인의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들과 함께 무질서하게 매시업되는 이 형식을 지키면서 매번 주제에 맞게 진행방식을 가다듬어갔다. 시작할 때 공유하는 아홉가지 규칙*을 만들고 이모지로 이루어진 인벤토리나 소그룹을 나누어 각기 다른 구글독스 링크로 들어가는 방식들을 실험하면서 룹앤테일은 이것을 독게임(DocGame)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내가 속한 룹앤테일은 게임이 가지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기반해서 다양한 장르와 플랫폼을 활용하여 작업을 한다. 2020년 2월에 전시 일정으로 귀국했다가 기약없이 한국에 머물게 되면서 룹앤테일의 작업들도 상황에 대처할 방법을 찾아야했다. 다수의 참여자들이 개인 스마트폰으로 전시장의 가상세계에 접속해서 함께 플레이하는 게임은 전시 오픈 직후 베이징이 통제 되면서 빈 공간에 몇 달간 남아있었다. 플레이어들이 현실 공간에서 물리적으로 함께하는 연결성을 선호했던 작업들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고 우리는 그들이 게임에 대해 해석 혹은 해석하지 않는 리액션들을 직접적으로 보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는 거의 외출을 하지 않았고 작업실에는 화분 식물이 하나씩 늘어갔다. 나는 줄곧 독일에 두고 온 분홍 장미를 생각했고 그가 화분 안에 있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올해 룹앤테일은 상황이 나아지든 그렇지 않든 온라인으로만 작업을 공개하기로 계획했다. 그중 하나는  팬데믹의 락다운 기간 중에 커머셜 빌딩에 남아있는 화분 식물들을 돌보는 게임이었다. 플레이어는 게임 링크에 접속해서 말 많은 인공지능을 도와 빌딩 안의 화분 식물들을 돌본다. 식물들의 상태가 수치로 표시되기는 하지만 인간-플레이어는 그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채로 인공지능의 분석에 맡긴다. 인간-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것은 식물을 보고 듣고 만지는 행위를 대체하는 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그것은 한동안 아무 행위도 하지 않고 식물을 그저 관찰하며 인간과는 다른 표현방식을 가진 식물을 이해하려고 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Garden of Rules, 2021

 

인간이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반려종에 대해 책임을 다하려는 것은 다음 게임에서도 플레이어의 가장 중요한 행위가 되었다. 가상세계에서 살고있는 누군가가 사라진 인간-관리자를 찾아달라는 트윗을 남긴다. 미래의 생물종을 연구하는 인간-관리자가 만든 세계에서 그가 외부와 접촉할 수 있는 길은 시뮬레이션에 내장된 트위터 공유 기능 뿐이기 때문이다. 네 개의 구역에서 살고 있는 실내생물, 공중생물, 수중생물, 육상생물은 각기 필요로하는 것이 있는데 인간-플레이어가 게임 링크에 접속하여 그것을 줄 수 있다. 플레이어들이 게임 세계 안의 정보를 모으고 퍼즐을 풀어 구역을 오픈하거나 생명체들을 돕는 등 유의미한 행위를 한다면 그 내용과 장면의 이미지가 캡쳐되어 트위터로 자동 전송된다. 무기명의 인간-플레이어들 각자가 얻은 정보와 행위의 결과들은 게임이 진행된 3일 동안 트위터 피드에 조금씩 쌓여갔다. 그리고 마지막 날 인간-관리자의 실종에 대한 전말이 드러났다. 우리는 미래의 생물종에 대한 연구를 인간을 포함한 반려종에 대한 연구로 해석했고 도시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에 적응하며 진화하는 생명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화분 식물, 지하철역 비둘기, 수족관 잉어, 주차장 길고양이와 인간이 함께 살면서 가지는 특성을 은유하면서 게임 플레이를 통해 도시의 반려종들이 소환되기를 바랐다. 

Mechanimal, 2021 

내년에 우리는 어떤 게임을 통해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을까. 상황이 나아진다 하더라도 아무 일도 없었던 듯 2년 전에 사용했던 대화법으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 같다. 각자가 최대한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상태를 찾되 그것이 고립이 아닌 느슨한 연대의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온라인에서 실험했던 커뮤니케이션 방식들을 계속 발전시키고자 한다. 어떤 상황이 오든 우리는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함께 이야기할지 고민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것이다. 게임은 대화하는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대화는 상대를 받아들이기 위해 이해해보려는 노력을 포함한다. 나의 규칙을 알리고 당신의 규칙을 파악하고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있는 지점을 고민하는 게임이 올해의 마지막 프로젝트로 예정되어 있다. 대화의 과정이 언제나 자의적인 해석과 오해의 소지를 가지고 있는 이상 다양한 게임의 대화법을 상상하고 시도해보는 것이 룹앤테일의 과제가 될 것 같다. 

———-

*독게임 DocGame 아홉가지 규칙 

1) 자유롭게 이야기해주세요. 언제든지 질문하셔도 좋습니다.

2) 구글독에서는 로그인상태보다 익명의 동물이 되면 좋습니다.

3) 자신이 어떤 글을 썼는지 이모지로 표시해도 되지만 밝히지 않아도 됩니다.

4) 진행 중에 불편하게 만드는 상황이나 특정한 표현이 있다면 모두에게 바로 공유해 주세요.

5) 게임마스터의 주요 공지는 코멘트로 표시됩니다. 오른쪽에 코멘트를 보시면 좋습니다.

6) 이모지 인벤토리는 모두가 공유하는 것으로 이모지를 잘라내기/붙여넣기해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7) 자유롭게 편집하셔도 됩니다. 공유하고 싶은 이미지나 사운드 링크도 좋아요.

8) 규칙은 합의하에 바뀔 수 있고 버려지거나 추가될 수 있습니다.

9) 게임마스터가 던지는 질문은 놀이의 규칙과 같습니다. 참여자분들이 바꿀 수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