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nt and Back of the Camera (EIDF Review)
다큐멘터리, 카메라의 앞과 뒤
*09 September 2011 / Seoul*
*published in SPACE Magazine*
“사진 찍기는 양방향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다. 하나는 앞에서, 또 하나는 뒤에서. 그렇다. ‘뒤’와도 상관이 있다. 마치 사냥꾼이 눈’앞’의 맹수를 향해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듯, 총알이 발사되는 순간, 반동으로 몸이 ‘뒤’로 밀려나듯, 사진을 찍는 사람 역시 셔터를 누르는 순간, ‘뒤’로 튕겨 나간다. 자기 자신을 향해서 말이다.” – 빔 벤더스 『한번은,』 1)
레오나르드 레텔 헴리히 감독의 마스터클래스
지난 8월말은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의 상영시간표에 맞춰 개인적인 스케줄을 짰다. 8월 21일에는 두 개의 EIDF 마스터클래스가 있었는데, 레오나르드 레텔 헴리히(Leonard Retel Helmrich) 감독의 ‘싱글샷 시네마’와 보리스 게레츠(Boris Gerrets) 감독의 ‘모바일 다큐멘터리 제작’이었다. 강의 제목은 잊어도 좋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특히 감독들은 카메라를 든 그들 자신의 위치에 대해 많은 시간 동안 이야기했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마주한 사실과 맺는 관계, 스토리텔러로서 이야기와 맺는 관계, 관찰자로서 풍경과 맺는 관계, 참여자로서 사건과 맺는 관계, 카메라맨으로서 피사체와 맺는 관계, 친구로서 카메라 앞에 선 사람들과의 관계.
그들은 카메라 뒤에서 다양한 ‘반동의 충격’을 경험했다. 그리고 카메라 앞과 뒤의 영역을 ‘융합’하는 대안들을 만들어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 영화는 ‘풍경의 서사’가 되었고, 그 안에서 무엇을 발견하는가는 관객의 몫이다.
1 반동
1-1. 레오나르도 레텔 헴리히 감독의 ‘내 별자리를 찾아서(Position Among the Stars)’는 무한한 공간에 떠 있는 무수히 많은 별들의 이미지로 시작되고 끝난다. 별들을 이으면 별자리가 되듯이, 사람들도 타인과 스스로를 이으며 각자의 자리를 만들어간다. 감독은 한 인도네시아 가족이 만들어내는 별자리를 찍고 있다. 그리고 마치 태양계로 들어가는 위성과도 같이, 자연스럽게 그 별자리 안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고자 했다.
1-2. 보리스 게레츠 감독의 ‘나일 수도 있었던, 혹은 나인 사람들(People I Could Have Been and Maybe Am)’에서 감독은 여배우로 출연한 산드린과 감정적으로 깊어졌다. 그는 호텔방에 누워있는 산드린과 그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을 ‘셀카’로 찍었다. 그리고 자신이 이 영화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혼란스러워했고, 영화를 계속 찍어야 하는지 고민했다.
2 융합
2-1. 헴리히 감독은 80년대부터 카메라를 자유롭게 하기 위한 실험을 해왔다. 20kg짜리 카메라가 공간을 유영하는 시선을 가질 수 있도록 천장과 연결한 채 실험하는 장면은, 목이 부러질 정도의 무게 때문에 천장에 부착한 채 착용할 수 밖에 없었던 최초의 HMD(Head-mounted Display)를 떠올리게 했다. 자체 제작한 스테디윙(Steadywing)과 카메라의 궤도(Camera Orbit) 움직임에 대한 실험은 (2) 카메라의 움직임에 자유를 부여했고, 감독 역시 감정의 흐름을 타고 상황 속으로 빠져 들어갈 수 있게 해주었다. 카메라 앞의 에너지를 직접적으로 받아들이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참여자’가 된 것이다. 헴리히 감독은 카메라를 가면(Mask)으로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시선이 사람들과 맞부딪힐 동안, 그의 카메라는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감독과 촬영 스텝들의 손에서 손으로 날아다닌다. 카메라의 앞과 뒤의 경계는 흐려졌고, 감독은 카메라 뒤에 서 있을 필요가 없다. 다만 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최상의 궤도를 만들어내기 위해, 가라데와 같은 운동이나 호흡법을 충분히 연습한다고 한다. 그렇게 감독은 ‘태양계로 들어가는 하나의 위성’과 같이 자연스럽게 카메라 앞의 세계로 들어섰다. ‘내 별자리를 찾아서’의 인도네시아 가족들은 헴리히 감독의 존재를 친숙하게 인지하고 있을 뿐, 주변을 떠다니는 카메라에 대해서는 무신경하게 보인다.
2-2. ‘낯선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면 어떨까?’ 이것이 ‘나일 수도 있었던, 혹은 나인 사람들’을 시작하게 만든 질문이었다. 우리에게는 이미 일상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방대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흐름 속에서 손쉽게 타인의 타임라인 속으로 끼어들었다가 떨어져 나오기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한도 끝도 없이 가벼워진 나머지, 때론 그 관계에서 정의되는 모든 공유와 대화의 영역은 허구인 것만 같을 때도 있지만, 그 관계망 자체가 너무도 분명하게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다시 그것에 집착하게 된다. 영화 속의 산드린이 보여주는 일상과 같이 말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남편감을 찾기 위해 브라질에서 영국으로 원정을 온 산드린의 일상은 인터넷 데이팅 사이트에 들어가 프로필을 확인하고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는 것으로 반복된다. 게레츠 감독은 그녀가 즉각적인 방식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통해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관계를 꿈꾸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감독 자신은 그 수단으로 영화를 찍었다. 우연히 거리의 사람들과 대화를 시작 할 때마다 휴대폰을 꺼내 촬영했기 때문에, 노키아 휴대폰 카메라는 이 영화의 유일한 촬영장비가 되었다. 피사체를 줌인하고 싶으면 직접 다가가서 휴대폰을 들이대야 했고, 그렇게 상대의 사적인 영역에 침투할 수 있었던 색다른 촬영의 경험이 반복되면서, 감독은 스스로를 상황의 ‘참여자’라고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산드린을 사랑하게 되면서, 그는 영화 속에서 본인의 존재를 규정하거나 제작자로서 선을 그어야 함을 느꼈다. 호텔방에서 산드린과 함께 있는 장면을 찍은 ‘셀카’ 푸티지를 영화에 담을 것인가를 한동안 고민했지만, 결국 선택은 ‘직감’에 의해 내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가 카메라 뒤에 있을 때조차 프레임 안에서 그의 존재를 느끼게 되었다. 감독은 말한다. “결국은 관찰자와 참여자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졌고 바로 그 모호한 지역이 영화의 영역이 되었다.”
3 풍경이 지닌 서사
3-1. 헴리히 감독은 지난 12년 동안 한 인도네시아 가족의 일상이 어떻게 사회적 범위의 경제, 종교, 정치의 요소들과 연결되는지에 관해 영화를 만들어왔다. 이제는 익숙해진 이 가족의 공간 안에서 감독은 어떠한 일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드디어 ‘그 일’이 벌어졌을 때 하나의 샷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를 연구했다. 그는 ‘싱글샷 시네마’를 통해서 카메라의 궤도 움직임이 내러티브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순간이 뿜어내는 감정의 속도와 상황의 역동적인 운동선을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담아내는 것이다. 재빠르게 벽을 타고 기어올라가는 바퀴벌레나, 옷가지를 들고 골목길을 내달리는 아이를 따라서 카메라는 일상의 영역에서 맞닥뜨리는 운동선들을 동일한 속도로 따라간다. 물론 감독은 이러한 현장의 카메라 궤도 움직임과 함께 영화의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것은 편집임을 강조했다. 편집을 통해 전체적인 틀 안에서 장면을 가감할 수 있다. 하지만 싱글샷으로 찍힌 씬 자체는 하나의 현실임을 말해준다. 그래서 감독은 될 수 있는 한 그 현실을 길게 지속하고자 노력해 왔다.
EIDF를 방문한 보리스 게레츠 감독
3-2. 게레츠 감독은 휴대폰 촬영이 ‘드리프팅,’ 즉 정처 없이 걸어 다니며 도시를 읽는 촬영 방식에 적합한 도구였다고 한다. 기 드보르의 ‘드리프트(drift/dérive)’는 도시를 표류하면서 비체계적인 방식으로 지식을 창조하는 전술이다. 무언가가 왜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인지, 왜 그것에 이끌린 것인지 자신은 모를 수도 있다. 다만 멈춰 서서 휴대폰을 꺼내고 요청하는 것이다. “1분만 카메라를 봐주시겠어요?” 그리고 마치 시를 읽는 것처럼 도시의 요소들을 엮어나가게 된다. 사실 감독의 초기 계획은 이후에 편집 과정을 거쳐 한편의 픽션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 계획은 그의 ‘배우들’과 공유되었고, 스티브와 산드린은 스스로를 배우로 인식하면서 그들의 일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배우들과 감독은 촬영이 진행될수록 그들의 실제 삶에서도 어떤 변화의 가능성을 볼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다. 하지만 순환 고리처럼 픽션을 향한 욕망은 현실로 돌아왔고, 현실은 다시 또 다른 픽션처럼 진행되었다. 결국 영화는 그들 각자가 변하는 대로 따라갔고, 멈추었다. 세 번째 주인공이었던 프레셔스는 영화가 완성되기 전에 사망했다. 그녀는 음유시인이었고, 핸드폰 카메라를 들여다보며 그녀의 시 ‘I’m a Poem’을 노래로 불렀다. “나는 시다. 나를 읽고, 당신의 영혼을 채우라.” 그렇게 이 다큐멘터리도 관객이 읽을 수 있는 시로 남게 되었다.
1) 빔 벤더스, 『한번은,』 이동준 역, (2011, 이봄). 기사의 소제목들 역시 이 책에서 가져왔다.
2) ‘싱글 샷 시네마’ 참고 http://www.singleshotcinema.com
‘스테디윙’ 제작법 및 9가지 ‘카메라 궤도’ 참고 http://www.facebook.com/SingleShotCinema
글 김영주 객원 기자 l 사진 제공 EIDF 사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