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gmar Bergman Exhibition Review
잉마르 베리만 설치전 & 마스터클래스 리뷰
*21 June 2011 / Seoul*
*published in SPACE Magazine*
10여 년 전 잉마르 베리만의 특별전을 통해 스크린에서 ‘죽음’을 목격했다. 해변가에 홀연히 나타난 ‘죽음’은 햇살 아래 꼿꼿이 선 채로 ‘너는 누구냐’ 라는 기사의 물음에 ‘나는 죽음이다’ 라고 대답한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난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했을 때도 그렇게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우리에게 잉마르 베리만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6월 10일부터 한 달간 아트하우스 모모 앞에서 공개되는 설치전, ‘잉마르 베리만: 심오한 질문을 멈추지 않았던 위대한 인간’은 잉마르 베리만의 대표작 이미지들을 포함하여, 스크린 안팎을 넘나드는 이야기들이 32가지 테마로 구성되었다. 인스톨레이션은 전체 80여 분 길이의 영상을 5개의 스크린에 15분의 시간차를 두고 상영한다.
인스톨레이션의 원제는 ‘The Man Who Asked Hard Questions’으로 2007년 타계한 베리만 감독을 추모하며 우디 앨런(Woody Allen) 감독이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기사의 제목을 따온 것이다. 베리만은 ‘죽음, 사랑, 예술, 신의 침묵, 인간관계의 어려움, 종교적인 회의로부터의 고뇌, 실패한 결혼, 소통의 불가능’ 등 인간 존재의 심연으로부터 떠오르는 질문들을 60여 편의 작품을 통해 다루었다. 그간 38편의 작품을 만들어낸 우디 앨런은 “그의 작품이 가지는 질적인 측면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양적인 측면에는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른다”라는 말로 영원히 신화 속에 머무를 베리만 감독을 추모했다.
32개의 테마는 죽음(death), 침묵(silence), 어머니(mother), 회의(doubt)와 같이 베리만이 전 생애에 걸쳐 천착했던 주제들뿐만 아니라 촬영 현장의 모습들이나 인터뷰들이 유머러스하게 뒤섞여 있다. 스티그 비요르크만(잉마르 베리만 다큐멘터리 감독)과 안데르스 라베니우스(잉마르 베리만 전시 디자이너)가 말하듯이, 선정된 32개의 테마는 엄정한 기준이라기보다는 베리만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일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기억의 편린일 것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수수께끼와 같은 조각들일 것이다. 흩어진 그림을 맞추듯이 관객들이 베리만의 작품 세계에 다가서도록 하는 것이 설치전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베리만이 공개하기를 꺼리던 작품까지 굳이 회고전에 포함시키는 바람에 베리만의 욕설 섞인 전화 통화로 그와 인연을 맺게 된 얀 홀름베리(잉마르 베리만 재단 대표)의 일화에서 볼 수 있듯이, 베리만을 대하는 스웨덴 사람들은 그의 모든 점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아마도 27번 테마인 ‘비누’가 포함되었을 것이다. 세균 탈을 뒤집어쓴 배우가 풍선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이 비누 광고는 베리만이 평생 단 한번 찍은 광고였다.
)
얀 홀름베리, 안데르스 라베니우스, 스티그 비요르크 1)
잉마르 베리만 재단이 관리하고 있는 아카이브는 상당히 세심하다 2). 대부분의 자료가 스웨덴어로 되어있다는 것만 고려한다면, 누구든지 신청 절차를 거쳐서 베리만이 2006년 2월 첫째 주 월요일에 먹은 것이 미트볼이라는 것을 알아낼 수 있다. 서신들과 영수증, 사소한 쪽지들. 무엇보다도 베리만은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아카이브에서 사진이나 이미지가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과 대조된다. 베리만이 늘 애용하던 특유의 누런색 노트들에는 문득 떠오른 문장들이 대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담겨있다. 그리고 각자에게 각인되는 베리만의 이미지들이 탄생한다.
1. 일어나서 카메라를 응시하는 소년. 그리고 팔을 뻗어 스크린 위를 더듬어가는 소년의 뒷모습이 보인다. 스크린 위에 흐릿하게 투사된 여성(혹은 두 명의 여성들)의 얼굴이 모호하게 흔들린다. 화이트 스크린 위에서 기억을 더듬듯이, 아니 역사를 빚어내듯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이 환영의 시퀀스. 감독 자신의 페르소나인 소년이 비어있는 캔버스 위에 마법처럼 배우를 등장시키는 (Persona, 1966)의 인트로는 스티그 비요르크만이 꼽은 가장 인상적인 베리만의 이미지이다.
2. 카메라를 응시하는 또 한 사람. 열정적인 여름 일탈의 산물인 아기를 내팽개치고 카페에서 노닥거리고 있는 모니카는 담배를 입에 물고 맞은편의 외간 남자에게 불을 붙여준다. 상대 남자의 팔뚝과 옆 얼굴은 잠시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다가 곧 부끄럽다는 듯 나가버린다. 반면 모니카는 우리를 똑바로 바라본다. 꽤 오래도록. 그 눈길은 누가 나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라고 묻는듯하다. 그녀의 배경은 비현실적으로 점점 어두워지며, 우리가 그녀의 시선에 집중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안데르스 라베니우스의 마음에 남았던 (Summer with Monika, 1953)의 한 장면이다.
3. 얀 홀름베리는 (Cries and Whispers, 1972) 중에서, 죽은 아그네스의 침상에서 신부님이 기도를 해주는 장면을 꼽았다. 그 장면을 볼 때마다 베리만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비극과 아이러니의 정수들이 압축되어있는 것을 느낀다며, 심지어 유머러스하다고 했다. 신부님은 죽은 자를 위한 기도가 아닌, 산 자를 위한 부탁을 한다. 그대가 만일 주님에게 닿는다면 우릴 위해 기도해 달라고. 이 어둠 속에, 이 비참한 땅에, 이 공허하고 어두운 하늘 아래 남겨진 우릴 위해 기도해 달라고. 그리하여 우리의 삶에 의미를 주십사 하고.
죽음: 질문 좀 그만할 수 없나?
기사: 절대로.
*- 중*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생을 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질문이다. 질문은 아마도 운명에 맞서는 가장 적극적인 길일 지도 모른다.
움직이지 않거나 조용히 할 수도 있어. 최소한 그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네가 숨어있는 장소는 방수가 되지 않아. 인생은 바깥에서 안으로 뚝뚝 흘러내리지. 네가 반응하도록 말이야.
*- 중 발췌* 3)
1) 6월 11일의 마스터클래스와 더불어 그에 앞서 얀 홀름베리(잉마르 베리만 재단 대표), 안데르스 라베니우스(잉마르 베리만 전시 디자이너), 스티그 비요르크만(잉마르 베리만 다큐멘터리 감독)를 만나 진행했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함.
2) 웹아카이빙도 잘 이루어지고 있다. http://www.ingmarbergman.se
3) 영문 대사
But you can refuse to move, refuse to talk, so that you don’t have to lie. You can shut yourself in. Then you needn’t play any parts or make wrong gestures. Or so you thought. But reality is diabolical. Your hiding place isn’t watertight. Life trickles in from the outside, and you’re forced to react. No one asks if it is true or false, if you’re genuine or just a sham.
글 김영주 객원 기자 | 사진 조신형 (모모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