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게임과 아트커뮤니티②] 경계에 선 게임들과 새로운 커뮤니티

[비디오게임과 아트커뮤니티②] 경계에 선 게임들과 새로운 커뮤니티

*04 October 2014 / Cologne*
*published in 똑똑 talk talk 커뮤니티와 아트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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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tist Is Present(2011)

경계에 선 게임들과 새로운 커뮤니티

게임 디자이너 피핀 바(Pippin Barr)의 아티스트 이즈 프레즌트(The Artist Is Present, 2011)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있었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의 퍼포먼스를 디지털 공간에 재현한 것이다. 뉴욕 시간대의 미술관 관람시간에 맞춰 플레이어는 디지털 버전의 모마로 들어설 수 있다. 전시장 안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앞쪽으로 걸어가보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예술가와 관객 한 명이 의자에 앉아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플레이어도 줄을 서 보지만 줄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게임을 만든 피핀 바 자신도 5시간을 기다려서야 아브라모비치의 앞에 앉을 수 있었다.
미술관에 길고 긴 줄을 선 사람들을 보고 농담으로 만들었던 이 게임을 보고 아브라모비치가 협업을 제안해왔고 이후 피핀 바는 그녀의 메소드를 담은 게임들을 공개하고 있다. 그의 또 다른 게임인 아트 게임(Art Game, 2013)에서는 예술 작업과 그것의 평가에 대한 과정이 유머러스하게 전개된다. 특히 조각이나 비디오아트를 만드는 과정을 테트리스나 아스테로이드와 같은 고전 게임의 매커니즘으로 치환시킨 것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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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gital Marina Abramovic Institute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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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Game (2013)

아트 게임(art game)이라고 분류되는 게임들이 있다. 예술계와의 협업을 통해 만든 게임이 디자이너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분류되는 경우도 있고, 게임 디자이너가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 넷아트에서 출발한 두 명의 게임 디자이너로 구성된 테일오브테일즈(Tale of Tales)는 리얼타임 아트 메니페스토(Realtime Art Manifesto, 2006)를 통해, 게임 테크놀로지를 새로운 예술적 표현을 위해 사용하고 게임디자이너 스스로 작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게임 산업계에서 살아남으려는 비즈니스 모델 같은 건 애초에 생각하지 못했다. 10여 년 간 꾸준히 자신들의 방식으로 게임을 만들었고 이제는 다음 게임을 개발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만큼의 팬 층을 확보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인디 게임(Indie Game: The Movie, 2012)에나 나올법한 인디 개발자들의 드라마틱한 성공은 여전히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다. 현재 개발 중인 선셋(Sunset, 2014)은 킥스타터를 통해 펀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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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dless Forest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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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entot l’ete (2012)

아트 게임이라는 명칭에 모두가 동의하고 있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그렇게 분류되는 게임을 만드는 디자이너들은 무엇보다도 게임을 개인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여긴다. 그래서 퍼스널 게임(personal game)이라는 용어가 함께 언급되곤 한다.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을 창작할 수 있는 오픈소스 툴인 트와인(Twine) 등 누구나 쉽게 자신의 이야기를 게임으로 만들 수 있는 도구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렇게 쏟아져 나오고 있는 퍼스널 게임들은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다양한 논의를 이끌어내고 있다.
뉴욕 모마에 소장되어있으며 아트 게임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게임 중 하나인 패시지(Passage, 2007)의 디자이너 제이슨 로러(Jason Rohrer)는 자신의 게임을 퍼스널 아트(personal art)라고 표현하며 메인 캐릭터는 자신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그는 더 캐슬 독트린(The Castle Doctrine, 2014)이라는 게임으로 논란의 한 복판에 선 적이 있다.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고 선 미국·백인·헤테로 가정의 남성·가장을 플레이하는 이 게임은 제이슨 로러가 총기소지를 옹호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논란이 더해졌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떤 배경에서 이 게임이 나오게 되었는가를 밝혔고, 그것에 대한 온라인 토론은 게임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 뜨거웠다. 퍼스널 게임은 게임 디자이너가 게임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게임의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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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astle Doctrine (2014)

대규모 개발비가 투자되는 AAA게임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게임연구자 미아 콘살보와 나단 듀튼은 그랜드 세프트 오토 (Grand Theft Auto 3, 2001)의 예를 들어서 게임 플레이의 윤리적인 부분에 대해 게임 디자이너가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는 구성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Game analysis: Developing a methodological toolkit for the qualitative study of games, 2006).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 캐릭터는 매춘부와의 섹스로 생명력을 채우고, 그 후에 그녀를 폭행함으로써 지불했던 돈을 되찾을 수 있다. 이것은 ‘매춘부를 통해 생명력을 채울 수 있다’와 ‘다른 캐릭터를 두들겨 패서 돈을 얻을 수 있다’라는 독립적인 두 행위의 조합이며, 그러한 창발적 게임플레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플레이어의 자유이다. 게임 디자이너는 시스템 안에서 가능한 상황들을 만들어놓고 그것에 대한 윤리적 책임은 피해갈 수 있는 것이다.

퍼스널 게임이나 아트 게임은 게임을 만드는 사람뿐만 아니라 게임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이끌어내고 있다. 기존의 게임문화를 향유해온 사람들 중에서는 아트 게임이나 퍼스널 게임은 진정한 게임이 아니며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게이머”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게임이라는 미디어를 협소하게 만드는 기존의 “게이머” 문화에 반기를 드는 쪽에서는 “게이머(gamer)”라는 명칭에 대해서 회의를 표시한다. 게임스 포 체인지 유럽(Games for Change Europe)의 디렉터인 카타리나 틸먼은 나는 게임 하는 것을 좋아하고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지만, 누군가 너는 “게이머”이냐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불편하다고 말한다. 게임 디벨로퍼 매거진의 편집장 브랜든 셰필드(Brandon Sheffield) 역시 게이머라는 호칭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며 더 이상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Let’s retire the word ‘gamer’, 2013).

최근 트위터 해시태그인 게이머게이트(#gamergate)를 통해 게임문화에서의 성차별에 대해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다. 이것은 어느 여성 인디게임 디자이너가 자신의 게임에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게임 매거진의 에디터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거짓 폭로로 시작되었다. 그것을 필두로 소위 게임 같지도 않은 게임들에 가치를 부여하는 현재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게이머”들의 너저분한 비방이 이어졌다. 이에 가마수트라(Gamasutra)의 에디터 리 알렉산더(Leigh Alexander)는 전통적인 게이밍과 게이머는 죽었고, 이제 우리는 게이머를 위해 게임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아티클을 썼다. 그녀는 “게이머”들이 화가 난 이유는 그들의 시대가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Gamers’ don’t have to be your audience. ‘Gamers’ are over, 2014).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게임 문화가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앞으로 더 다양한 게임들과 더 다양한 플레이어들을 가지게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기존의 게임 장르에 속하지 않고 경계에 선 게임들은 게임이라는 미디어를 다른 방향에서 사유하도록 하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아트 게임이나 퍼스널 게임은 “게이머”처럼 차차 없어질 용어가 될 것이지만, 당분간은 이 새로운 움직임을 위해 여러 맥락에서 다양한 의도를 가지고 사용될 것이다.

김영주 / 독일 쾰른에 거주중인 인디 게임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