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lust Exhibition Review

원더러스트, 예술가들의 여정

*29 August 2012 / Seoul*
*published in SPAC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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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el Broodthaers, Jardin d’hiver II (Winter Garden), Mixed media, Palais des Beaux-Arts, Bruxelles, 1974

원더러스트(Wanderlust)는 정착하지 않는 여정을 향한 욕망을 담은 단어다. 전을 기획한 한스 마리아 드 울프(Hans Maria De Wolf)는 원더러스트를 “사회에 맞서 개인의 자유를 얻기 위해 자신만의 장소를 찾아내려는 내밀한 욕구”라고 정의 내리면서, “걷기, 여행하기, 이주하기, 새로운 곳 탐사하기 등과 같은 행위에 내포된 관념과도 관련이 깊다”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전의 다섯 명의 벨기에 작가들은 “항상 또 다른 선택지를 찾아 관습이라는 언덕 저편을 탐구”하는 ‘원더러스트 예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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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oré d’O, Collier de perles, Site-specific installation, 2012, ©Honoré d’O (left)

예술가들이 세계를 탐구하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자신만의 경로를 구축하는 과정은 걷는 행위와 유사하다. 걷는다는 것은 모든 영역을 통과하면서도 어느 하나의 영역에만 머무르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원더러스트 작가들의 여정은 다양한 주제와 매체를 관통하면서 나아간다. 여정을 위해 수집된 자료나 오브제를 전시한 쇼케이스는 ‘Artists’Position: Walking Away’라고 명명되었는데, 그것은 예술가들의 위치가 걸어나가는 경로 위에 있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항상 이동 중이다. 쇼케이스 안의 작품 중 프란시스 알리스(Francis Alyls)의 ‘The Loop’(1997)는 멕시코에서 출발해 태평양을 한 바퀴 돌아 미국에 이르는 여행길을 제시하는 것으로, 멕시코와 미국 사이에 장벽이 존재함을 비판한다. 지도 위에 자신의 경로를 그림으로써 다른 경로와의 관계를 보여주고, 그로부터 개인의 사회적 입장 제시를 보여준다.
걸어나간다는 것은 한 공간과 다른 공간을 이어주는 행위이면서, 사이의 공간에서 튀어오르는 우연적 요소들을 탐험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호노레도(Honore d’O)의 ‘Collier de Perles’(2012)는 물 위에 떠 있는 횡단보도를 보여준다. 건너갈 수는 없지만 이편과 저편을 연결하는 보행자 표시는 걷기의 이동선이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정신적 공간 안에서도 펼쳐짐을 보여준다. 검은 아스팔트 위 흰 페인트 자국이 물 위에 새겨질 때 우리는 그 경로를 밟는 환상을 경험한다. 물 위에 놓여 길을 만들던 판자들은 다시 전시장에 플라스틱 더미로 첩첩이 쌓이고, 이와 같이 경로는 펼쳐졌다 다시 해체됨을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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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is Alÿs, The Loop, 1997

길을 만들고, 해체하고, 다시 조합하는 것은 작가들의 여정을 따라가는 관객의 몫이기도 하다. 이때 누군가의 여정은 다른 누군가의 여정과 교차되어 새로운 길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Duett’(1999)에서 알리스와 호노레도는 각각 튜바의 상, 하단부를 들고 베니스의 양 극단에 도달했다. 그들은 3일 동안 서로를 찾아 걸었다. 엇갈리는 두 사람의 경로와는 별개로, 튜바의 상단부와 하단부를 각각 우연히 마주친 베니스 거리의 사람들에게 그들은 만나야 할 존재, 언젠가 합쳐질 가능성이 있는 조각이 된다. 호노레도의 ‘Opera Aperta’(2006)에서는 관객들의 행위가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될 수 있다. 두루마리 속에는 이미지와 단어가 파편적으로 기록되어 있고, 이질적인 것들은 하나의 원통 안에 휘감겨 있다. 관객들이 천천히 원통을 돌리고 이미지와 단어가 흘러갈 때 자료는 하나의 흐름을 가진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이 작품은 관객의 행위에 의해 진행되는 ‘열린 예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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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ëlle Tuerlinckx, La collection fondamental, Paper, plexiglass plate, 9 wooden tables, 7 wooden planks, stones, paint, 2012, ©Joëlle Tuerlinckx 2012

전은 여정에 대한 것인 동시에 여정을 기록하는 실험을 보여준다. 여정 속에는 기록할 수 있는 것, 그렇지 못한 것이 있다. 여정의 결과는 세세한 경로나 정보들을 누락하고 사적인 경험의 맥락 속에서 의미를 가지는 추상적인 오브제로 표현되기도 한다. 죠엘 투엘링스(Joelle Tuerlinckx)의 ‘The Fundamental Collection’(2012)에는 수집된 돌들이 문짝 위에 놓여 있다. 어느 장소에서나 볼 수 있는 이 돌들을 구분하는 것은 수집 장소나 날짜를 적어놓은 드로잉을 통해서 가능하다. ‘A Postcard Work’(2003~2012)는 같은 장면이 담긴 세 장의 엽서가 겹쳐져 있고, 그 위에 영사기의 빛이 투사된 작품이다. 계속해서 덧입게 되는 기억의 중첩들 위에서 우리가 인위적인 하나의 프레임을 정해 그 장소를 실재한다고 여기는 것을 표상해주는 듯하다. 여정의 속성이 그렇듯이 그것을 담아내는 행위 역시 과정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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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amarenko, The Aeromodeller, 1969 – 71

의 작업들이 정착하지 않으려는 욕망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경로에서 나온 오브제들은 미술관 안에 정지되어 있다.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또 다른 경로를 그리면서 이곳을 찾아온 관객들이다. 파나마렌코(Panamarenko)는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가상의 운송 수단을 고안해왔다. 하지만 전시장에는 비행선에 대한 일련의 시각물만 전시되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날 수 있는 가능성이며 동시에 정지하고 있는 현 상황이다. 정지해 있기 때문에 그것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상상할 수 있다. 이것이 원더러스트 작업의 속성일 것이다.

경로를 따라 세상을 탐험하는 예술가들은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지만, 그들 자신이 돌아갈 곳을 남겨둔다. 그곳은 자신만을 위한 상상과 명상의 공간이다. 의 입구와 출구를 잇는 마르셀 브로테어스(Marcel Broodthaers)의 ‘Winter Garden’(1974)은 야자수와 19세기 백과사전 도판들, 멜랑콜리한 음악의 효과로, 현실과는 다른 레이어 위에 있는 공간을 암시하면서도 동시에 실재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발터 벤야민이 파리를 걸을 때 도시는 풍경이 되기도 하고 방이 되기도 했듯이, ‘Winter Garden’ 역시 하나의 아득한 풍경이 되기도 하고 작가의 방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전시를 돌아보면서 예술가들의 여정을 낭만적으로 향유하던 관객들이 그들의 여정으로부터 돌아와 사유를 시작하는 곳이기도 하다.

*원더러스트: 또 다른 언덕 너머로 가는 끊임없는 여정 /아트선재센터 23 June – 12 August, 2012*

김영주(독립기획자) | 이미지 제공 아트선재센터

월간SPACE 2012년 8월호 (5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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