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밑, 0시, 알아봄] 비평 모임

기획: 이다영

글: 박이선, 이다영, 이소요

2023

룹앤테일 [다리 밑, 0시, 알아봄] 전시 (포스터디자인: 유나킴씨)

0.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이다영)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9월의 어느날, 나는 이소요 작가, 박이선 기획자와 함께 룹앤테일 개인전 《다리 밑, 0시, 알아봄》 전시장을 찾았다. 룹앤테일의 이번 전시 내용을 듣고,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은 두 분을 초대한 자리였다. 게임 디자이너이자 미디어아티스트 듀오 룹앤테일(Loopntale)은 비디오 게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상호작용적 행위 메커니즘을 다각적인 매체 실험을 통해서 작품으로 구현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들은 관람객이 작품에 대한 적극적인 관람행위(Play)를 통해 작가의 메시지를 발견하길 원하며, 그로 인해 파생되는 새로운 이야기로 작품의 세계가 확장되는 것을 추구한다. 이번 전시에 대한 비평 모임은 룹앤테일의 작품 활동 지향점과 나의 지난 경험을 계기로 촉발되었다. 나는 지난 시간 예술학교의 부설기관 연구원으로서 예술에 입문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예술가가 자신의 주제를 탐구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적절한 표현 매체를 선택하고 실험하는 창작 과정을 ‘주제 접근 – 표현 매체 실험 – 비평’으로 단계화한 융합적 창작 교육 방법을 연구하고 기획-실행했다. 그 과정에서 작품에 대한 비평적 대화, 즉 ‘창작자의 관점은 무엇인지, 그 관점은 어떤 맥락에서 비롯되었으며, 선택한 표현 매체는 무엇이며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는 어떤 연결점을 찾아볼 수 있는지’에 대해 함께 이야기나누고 비평할 수 있는 공동체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 이유는 작품이 일정한 기간동안 관람객을 만나는 전시의 물리적 한계에서 벗어나, 여러 사람들의 관점으로 꾸준히 회자되고 연구되기를 추구해야 작가의 관점이 작품과 함께 성장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리 밑, 0시, 알아봄》은 작가가 ‘탄천 생태경관보전지역’이라는 도시와 자연의 경계 지역을, 주로 자정에 산책하면서 겪은 경험에서 생겨난 이야기를 아트게임 작품 6점으로 구성한 전시이다. 작가는 서로 알아보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그곳에서 만난 동물과 인간 간의 관계, 그리고 생태계에 대한 사유를 게임 메커니즘으로 은유하여 표현하였다. 이에, 작가가 발견한 이야기인 ‘경계(또는 틈새)의 생태계’와 그 이야기를 담는 방식으로 선택한 ‘게임 매체’에 대한 이야기를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분들과 함께하고자 이소요 작가와 박이선 기획자를 초청했다. 이들은 융합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주제를 탐구하는 연구자이자, 연구 내용을 다방면의 활동과 플랫폼으로 펼쳐보이는 창작자이다. 이소요 작가는 다양한 전시를 통해 인간과 생물 간의 관계를 탐구하며, 생물학과 예술의 학제 간 연구를 바탕으로 생물 미디어(biological media)에 대한 심도 깊은 작품과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인류세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동시대 시각예술이 제공할 수 있는 비평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박이선 기획자는 문화연구를 전공한 게임연구자로, 게임과 플레이어에 대한 글을 쓰고 연구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그는 게임 화면 속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과 동시에 게임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게임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에 주목하는 다양한 연구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연구자이자 창작자인 2명의 필자와 나는 다음과 같은 4가지의 구성으로 전시에 대한 각자의 관점과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자 한다. 1. 작가는 동시대에 대해서 어떤 태도와 시선을 가지고 있는가, 2. 그 시선 끝에서 발견한 이야기는 무엇인가, 3. 그 이야기를 담고, 표현하는 매체로 무엇을 선택했으며 어떤 관계성을 가지는가, 그리고 더나아가 4. 그러한 작가의 선택들이 관람자에게는 어떻게 다가갈 수 있는가. 

1. 작가의 태도와 시선 _ <경계 산책자, 룹앤테일>, 이다영

룹앤테일은 ‘경계를 산책하는 경험’에서 시작한 이야기로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 이 전시에서 중요한 단어는 ‘경계’와 ‘산책’이다. 작가는 ‘경계’의 의미를 3가지로 이야기한다. 첫번째는 도시와 자연 사이의 중간지대에 있는 생태적 공간, 두번째는 오늘에서 내일로 넘어가는 시간인 자정, 그리고 세번째는 그 경계의 시공간에서 서로를 알아보지만 적정한 거리를 두며 공존하는 인간과 동물 간의 관계를 의미한다. 

그럼 경계를 ‘산책’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여기서 ‘산책’은 둘러보고 관찰하고 사유하며, 그것들이 경계에 있음에서 이야기를 발견하고 의미를 만들어내는, 발터 벤야민의 ‘산책자(플라뇌르, Flâneur)’적 행위와 태도로 볼 수 있다. 벤야민의 ‘산책자’1 발터 벤야민의 ‘도시 산책자’ 개념은 그의 저서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 <The Flâneur>로 소개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윤미애의 저서 『발터 벤야민과 도시산책자의 사유』(문학동네, 2020)에서 저자의 해석과 더불어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다. 한편, 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반비, 2017)에서는 플라뇌르를 ‘어두운 밤길도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는 남성적 사유와 행동’으로 언급했다. 우리는 룹앤테일의 ‘경계 산책’이 작가에게는 특별한 경험과 사유를 제공한 행위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제약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는 도시를 여유롭게 돌아다니는 목적 없는 산책뿐만 아니라, 도시를 이해하고 경험하기 위해 의도적 노력을 하는, 여유로운 관찰과 예민한 인식을 통해 도시와 상호작용하는 시민에 대한 개념이다. 그는 산책자를 근대 도시에서 아주 중요한 구성원으로 보았다. 벤야민이 이 개념을 구상한 19세기 파리는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며 근대화된 도시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당시 파리의 산책자들은 새로운 유형의 공간인 대형 백화점, 아케이드, 광장을 경험하면서 그들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탐구하기 위해 다양한 기록으로 남겼다. 그들의 관찰, 경험, 사유, 해석은 도시를 겉으로 보이는 물리적 구조 측면을 넘어, 숨겨진 얼굴과 표정까지 포함한 문화적, 역사적 층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을 시사하며, 도시의 성격을 풍부하게 만들어 나가는데 중요한 행위이다. 

앞서 언급한 도시의 산책자로서 도시를 관찰하고, 사유하고,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 기준점이 되는 몇가지의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 20세기 중반 도시 계획과 디자인 분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영국의 건축가 고든 컬렌(Gordon Cullen)은 그의 도시 공간에 대한 개념을 설명한 다큐멘터리 <타운스케이프(Townscape)> (1990)에서 도시를 관찰할때 다음과 같이 4가지 질문의 필요성을 얘기했다. ①그곳에 누가 사는가, ②그 도시의 리듬은 어떠한가(24시간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도시인가, 느린 시간 속에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목가적인 마을인가) , ③그 도시의 성격은 어떠한가(관광지와 같이 외부인에게 친근한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지켜야할 규칙이 엄격한가, 또는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위협적인 곳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④내가 여기에 속하는가. 마지막 네번째 질문은 관찰자의 시점을 3인칭에서 1인칭으로 전환시키면서, 피상적인 관찰의 나열로만 그칠 수 있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그 시점의 경계 안과 밖을 오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이는 장소에 대해서 더 깊이있고 풍부한 사유로 이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확장하며, 벤야민이 추구하는 ‘산책자’의 행위와 맞닿아 있다.  

‘경계’의 시간과 공간은 두렵다. 우리가 평소에 인지하는 생태계와는 달라 그 안에 어떤 존재가 있는지 알 수 없고, 자정의 어둠으로 그 모습이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룹앤테일의 ‘경계 산책’은 팬데믹 시기에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을 마주치지 않고 산책하려는 이유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시간이 지속되면서 서로 알아보기 시작한 다른 존재들이 생겼다. 그리고 서로를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생긴 관계를 통해 작가는 그 장소의 일원이 되었으며, 더 이상 두려운 장소가 아닌, 작가의 관찰과 사유를 직조하여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장소가 되었다. 작가의 이러한 ‘산책자’적 태도의 시선 끝에서 하고자하는 이야기가 촉발된 것이다.

2. 시선 끝에서 발견한 이야기 _ <틈새에서 마주친 사람들>, 이소요

“알아봄(recognition)”. 2023년 가을, 태풍이 지나가던 오후, 잠실에 있는 한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에서 만난 룹앤테일의 작품들2 2023년 9월 13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아트잠실에서 열린 룹앤테일 개인전 〈다리 밑, 0시, 알아봄〉을 구성하는 아트게임 작품들을 가리킨다. 지극히 사적인 경험담을 불특정한 관람객에게 전달하고자 여섯 개의 챕터로 구분하여 단계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작가 웹사이트에 전시와 작품 소개가 실려 있다. 룹앤테일, “Under the Bridge, Midnight, Recognition”, LOOPNTALE 룹앤테일 웹사이트, 2023년 12월 29일 조회, https://loopntale.com/ubmr/은 독립적이던 행위자3 이 글에서 행위자(actor)는 행위자 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에서 빌려온 용어로 행위성(agency)를 가지는 인간, 비인간 모두를 포함한다.들이 마주치며 서로의 시선에 들어오고 이윽고 알아보게 되면서 생겨난 삶의 변화를 다루고 있었다. 탄천 1교 “다리 밑”을 산책하던 작가가 어느 날 “0시”에 마주친 한 마리 들개를 “알아봄”으로서, 작가의 몸과 마음이 달라졌음은 물론, 그 경험을 담은 작품들의 설계ˑ형식ˑ내용을 아우르는 모든 요소들이 정해졌을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정치생태학자 제인 베넷(Jane Bennett)은 2010년 저서 『Vibrant Matter: a political ecology of things』의 첫 단원에서 “thing power”, 직역하면 ‘사물의 힘’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4 Jane Bennett, Vibrant Matter: a political ecology of things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10), 2. 2020년 한국어 번역서가 출간되었다. 제인 베넷, 문성재 옮김, 『생동하는 물질: 사물에 대한 정치생태학』(서울: 현실문화연구, 2020). 이 글에서는 번역서를 참고하되, 글쓴이가 원서를 번역하여 인용했다.. 이 책은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가 ‘마주침의 유물론(materialism of the encounter)’이라 부른 신유물론 계보안에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이론적 탐구에서 비롯되기 보다는 저자가 실제로 마주친 사물들에 대한 반응으로 쓰여졌다. 베넷이 말하는 사물의 힘은 물질, 혹은 물성이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실체로 응집되어 주관성을 가졌을 때 발생한다. 그는 미국 볼티모어에 있는 집 근처 길거리, 즉 날마다 다니는 장소를 지나다가 문득 도로변 빗물받이에 걸린 사물들을 감지한다. 라지 사이즈 검정색 작업장갑 한 짝, 두텁게 엉겨 붙은 참나무 꽃가루, 흠집 없이 깨끗한 죽은 쥐 한 마리, 흰색 플라스틱 병뚜껑 한 개, 매끄러운 나무때기 하나. 무심코 지나칠 수 있었던 이 사물들의 배치가 그날따라 저자를 부르는 힘을 가졌고, 인간중심이 아닌 또다른 세상, 주체와 객체의 관계로 분석할 수 없는 세상, 물질이 가지는 생동성을 체감할 수 있는 세상으로의 틈새를 열어주었던 것이다. 저자를 포함하는 이 사물들이 의도성을 가지고 한 자리에 모였을 것이라 생각하기 어렵고, 우연이 반복되며 만나게 되었을 터이지만, 하나의 시간, 하나의 장소라는 특수한 틈새에서 마주친 서로의 존재를 헤아려보며 자신의 한계를 넘어섰을 것이다. 단지, 참나무 꽃가루가 엉겨 붙어 있었다면, 방금 봄비가 내렸을 것이며, 그 촉촉한 물과 흙의 내음이 저자를 사물들의 세계로 이끌었을 지 모른다.

마주침의 유물론을 이야기한 알튀세르 역시 실체로 다가온 하나의 물질, 즉 떨어지는 빗물에서 영감을 얻었다. “비가 온다. 그러니 이 책이, 무엇보다도, 그저 비에 관한 책이 되기를.”5“It is raining. Let this book therefore be, before all else, a book, about ordinary rain.” Louis Althusser, “The Underground Current of the Materialism of the Encounter” in Philosophy of the Encounter: Later Writings, 1978-87, eds. François Matheron and Oliver Corpet., trans. G. M. Goshgarian, (London & New York: Verso, 2006), 167. 본문의 인용문은 글쓴이가 우리말로 옮겼다. 이 구절은 저자가 말년에 남긴 한 편의 원고를 여는 첫 문장이다.6 이 원고는 제목 없는 미발표작이었으며, 저자 사후에 “The Underground Current of the Materialism of the Encounter (마주침의 유물론이라는 은밀한 동향, 글쓴이의 번역)”이라는 제목으로 각주 3의 편집서에 출판되었다. 낙하하는 빗방울의 세계와 만나면서, 알튀세르는 에피쿠로스가 세계의 기원을 설명한 문장을 체감하게 된다. 무수한 원자가 허공에서 수직으로 평행하게 떨어지다가, 우연한 교란에 의해 서로 부딪치는, 혹은 마주치는 상황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최초의 마주침들이 연쇄적이면서 지속적으로 일어나기에 이 세상이 있다는 것이다. 단지, 각각의 빗방울이 서로 만나지 않고 평행하기 떨어지더라도, 미생물로 가득한 공기 생태계의 매트릭스를 교란하여 그 삶을 다채롭게 만들었을 지 모른다.

룹앤테일이 어느 날 자정 탄천 1교 아래를 걷다가 한 마리 들개를 마주친 사건으로 돌아가, 이것 역시 반복되는 우연의 결과였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마주침이 있기까지 주어진 조건을 조금은 추적해볼 수 있다. 탄천1교는 서울시 지정 ‘생태·경관보전지역’7 생태·경관보전지역은 우리나라 자연환경보전법에 의거  원시성, 생물다양성, 생물대표성, 특수한 지질이나 지형, 수려한 경관 등을 갖추는 것으로 평가하여 보호하는 장소이다. “생태·경관보전지역”, 국가 생물다양성 정보공유체계, 2023년 12월 조회, https://www.kbr.go.kr/content/view.do?menuKey=454&contentKey=21.인 ‘탄천’ 즉, 송파구 탄천 2교에서 강남구 대곡교 사이 약 8km 구간에 속한다.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지 이십 년이 훌쩍 넘으면서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하천과 녹지에 다양한 생물이 정착했다. 작가가 관계를 맺게 된 들개도 이 생태계의 구성원이었다. 사람의 손을 직접 타기보다는, 사람이 교란한, 즉 일부러 조성하고 바꾸어 놓은 환경에서 자생력을 가지는 행위자였다. 이 개는 사람에게 완전히 길들여 지기 보다 떠돌기를 선택했으나, 작가와 마주치면서 교감하였고, 일정한 물리적 거리를 유지한 채 다리 밑 시공간을 나누기에 이르렀다. 의도치 않게 탄천 근처로 이사한 작가는 일과 중 하나로 천변을 산책했고, 그곳에서 들개와 마주쳤을 때 ‘돌보아야 한다’는, 어쩌면 지극히 인간중심의 관점을 의식하며 이 행위자를 대하고 마주침의 내용을 결정해갔다. 들개에게 먹을 것을 주어 생존에 기여했고, 그가 낳은 일곱 마리의 새끼를 유기견 센터에서 구조하였고, 그 중 하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기도 하였다. 한 편 이러한 적극성이 일방적이었다고 비판할 수는 결코 없다. 마주치지 않아야 하는 수많은 이유들을 고려하며 신중을 기하였으며 갈등 속에서,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의식하며 마주침의 반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룹앤테일의 《다리 밑, 0시, 알아봄》을 구성하는 여섯 챕터는 서울의 탄천이라는 특수한 생태적 틈새(ecological niche)8 이 글에서는 ‘ecological niche’를 ‘생태적 틈새’로 번역하여 썼지만, 생물학 용어로는 ‘생태적 지위’이다. 농학자 이나가키 히데히로(稻垣榮洋)는 어떤 생물이 가장 높은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영역으로 좁거나 넓을 수 있고 그 조건이 다양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니치는 틈새가 아니다”라고 강조하기도 하였다. 이나가키 히데히로, 장은정 옮김, 식물학 수업(고양: 키라북스, 2021), 35.를 배경으로 우연과 우연이 겹쳐 틈새에서 마주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진으로, 컴퓨터그래픽으로, 출력물과 모니터 화면과 사물로, 아이콘과 활자와 소리로, 그리고 이것들을 호출하여 연결하는 게이밍의 규칙들로 작가가 일생에서 경험한 수많은 마주침의 순간들이 촘촘하게 묘사되어 있기에, 그의 삶을 주마등을 보듯 들여다볼 수 있었다. 떠돌기를 선택한 행위자와 돌보기를 선택한 행위자, 이들이 서로를 알아채게끔 만든 사물의 힘, 그 힘으로 열린 마주침의 세상에서 작가는 이 만남을 겪고 다루면서 ‘그저 무엇에 관한 작품이 되기를’ 바랐을 지 헤아려보게 된다.

3. 이야기를 담는 매체 설계 _ <작가의 이야기를 게임 세계로 구축한다는 것>, 박이선

《다리 밑, 0시, 알아봄》은 룹앤테일이 2년 간 작업한 게임으로 구성된 일련의 이야기들이다. 2년이라는 시간은 작가가 서울 탄천 일대를 산책해왔던 시기이기도 하다. 작가는 긴 시간 동안 그곳에서 다양한 생물 종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를 느껴오며 여러 사건들을 계기로 얻은 책임감과 인간/비인간 사이의 ‘공존’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때의 경험들이 게임이라는 매체를 통해 하나의 세계로 구축되고 다양한 방식으로 그 이야기가 전달된다. 작가에게 남겨진 수많은 영상, 사진, 스크린샷, 녹음 등의 기록들은 게임의 재료가 되었다.

회화나 조각 같은 전통적인 예술의 매체와 다르게, 게임은 감상자에게 행동을 요구한다. ‘보는 것’보다 ‘하는 것’이 작품 감상의 요점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특성만을 고려한다면 해석의 층위는 단일해질 수 있다.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 일 것이다. 게임은 작품 내에서 어떤 규칙과 행동을 허용하는지에 따라 그 표현과 감상을 무한히 달리할 수 있다. 룹앤테일은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각각의 작품마다 게임의 요소를 다르게 선택하고 배치하여 이야기를 전달한다. 마치 우리가 생각을 표현할 때 여러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것과 유사하게 게임에 어떠한 규칙이 주어졌는지, 데이터는 어떤 절차로 처리되는지, 캐릭터는 누구인지, 카메라의 시점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그리고 컨트롤러는 어떻게 조작되는 지의 문제는 모두 다르게 설정이 된다. 

이야기 방법으로서 규칙 설계. 그렇다면 매체로서 게임은 어떻게 하나로 정의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지론을 펼치고 있지만 그 중에서 게임학자 예스퍼 율(Jesper Juul)의 정의는 가장 포괄적이면서 설득적이다. 그의 말을 가져오면, 게임이란 주어진 입력에 어떻게 반응할지 시스템적으로 설계된 ‘상태 기계(State Machine)’다. 상태 기계는 수학적 모델 중 하나인데, 예를 들어 전등이 하나 있다고 했을 때 전등은 두 개의 ‘상태’를 가진다. 꺼져 있거나 아니면 켜지는 것. 불 꺼진 전등의 스위치를 올리면, 전등은 ‘꺼짐’에서 ‘켜짐’이라는 상태로 이동해 빛을 밝히는 결과를 내보인다. 불을 켜고 끄는 행위는 전등 모델에서 미리 허용된 행위다.

율의 맥락에서 게임도 전등 모델과 마찬가지로 행위와 상태가 규정되어 있는 시스템이다. 게임의 작동 방식은 ‘규칙’이다. 규칙은 데이터가 처리되는 메커니즘의 기계적인 의미를 더해 ‘메카닉’이라고도 불린다. 규칙은 감상자(플레이어)에게 허용되는 행위와 그에 대한 결과를 정하며, 플레이어는 가능한 행위를 통해 데이터에 변화를 일으킨다. 변화한 데이터는 게임의 규칙에 의거해 처리된 결과를 보여주면서 끊임없이 상태를 이동시킨다. 이것이 게임의 포괄적인 설명이며, 규칙은 게임이라는 매체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룹앤테일은 게임의 규칙을 설계함으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허용의 기술>은 널리 알려진 ‘지뢰 찾기’ 게임의 규칙을 통해 공존이라는 가치를 은유적으로 제시한다. 지뢰 찾기는 격자형 보드의 땅에서 지뢰가 묻힌 지역을 찾아내고 그 위치를 피해 안전 영역을 선택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만약 지뢰를 선택하게 되면 폭탄이 터지며 게임은 끝난다. 룹앤테일은 지뢰 찾기의 규칙을 유지하지만 전쟁에 비유하여 안전을 찾고자 하는 본래의 의미는 정반대로 뒤튼다. <허용의 기술>에서 플레이어는 전쟁 지역이 아닌 여러 존재가 뒤섞여 공존하는 넓은 영토에서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분리해낸다. 위험/안전의 대립된 가치를 넘어서 인간/비인간과 같이 서로 다른 종의 영역을 이해하고, 상호 공존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역 선별의 실패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허용을 실패한 것으로서 게임 오버를 의미하기도 한다.

또다른 작업 <피드(Feed) III + IV>는 자연 재해와 생존을 이야기하기 위해 캐주얼 게임 ‘타일 쌓기’를 사용한다. 플레이어는 하천의 범람을 피하는 식물이 된다. 한 장의 타일이 좌우로 이동하는 타이밍에 맞추어 점프했을 때, 타일은 점차 쌓이며 안정적인 탑이 되어간다. 리듬에 맞게 점프하는 행동은 생존하고자 하는 식물의 몸짓이기도 하다. 자꾸 균형이 어긋나는 타일들처럼, 폭우로 잠겨버리는 낮은 지대로부터 인간이 견고하게 만든 교량까지 올라가는 일은 쉽지가 않다.  또다른 작업 <경계 산책>은 ‘카드 맞추기’의 규칙을 가져온다. 카드 맞추기는 뒤집힌 카드가 순간적으로 앞을 보이는 순간을 기억하여 모든 카드의 짝을 맞추는 규칙을 가진 게임이다. 작가는 카드의 앞면에 탄천에서 지낸 기간동안 만난 유기견(또는 야생견) 등의 다양한 존재들의 이미지를 넣음으로써, 이 게임을 통해 순간의 조우와 기억하려는 실천을 이야기하게 된다.

게임의 시점을 통해 말하는 각자의 ‘관점’. 모든 이야기에는 ‘시점’이 존재한다. 문학에서 시점은 이야기가 서술되는 발화자로서 일인칭 주인공, 일인칭 관찰자, 전지적 작가 시점 등으로 나뉘며, 영화는 카메라의 위치와 움직임에 따라 객관적 시점과 주관적 시점 등으로 분류된다. 게임에서 시점은 일반적으로 일인칭 시점, 삼인칭 시점, 전지적 시점으로 구분하고, 사물의 투영 방식에 따라서 탑 뷰, 아이소메트릭 등으로 나뉜다. 특정 게임 장르를 뜻하는 ‘FPS’(First Person Shooter), ‘TPS’(Third Person Shooter)와 같은 용어는 봤을 때 게임에서 시점은 장르적 의미를 함축하기도 한다. 

하지만 게임에서 시점은 보는 것과 하는 것의 연계로 풀이되어야만 한다. 문학이 서술자의 언어를 토대로 시점을 만들고, 영화가 카메라의 시각적인 언어를 사용했다면, 게임에서 시점은 카메라와 더불어 행위하는 대상의 의미를 더한다. 게임의 카메라는 조작 장치에 의해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누가 말하는가’, ‘누가 보는가’에 게임 세계와 조작 장치로 매개된 ‘누가 행동하는가’의 문제가 추가된다. 전지적 시점으로 오브젝트를 바라보더라도 행위로 인해 일인칭의 몰입감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게임의 시점은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구로 그치지 않고, 플레이어가 게임 세계를 체험하고 탐험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우리가 게임 속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 하느냐에 따라 게임 경험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결정한다.

그런 의미에서 룹앤테일의 작업에서 주목할 수 있는 또다른 측면은 시점과 행위 간의 관계이다. 전시의 작업들은 여러 개의 시점을 하나의 행위가 관통 할 수 있도록 게임의 규칙을 가지고 있다. <피드 (Feed)> 시리즈는 공통적으로 여러 개의 화면을 통해 게임이 전개된다. <피드 (Feed) I + II>는 세 개의 화면으로 구성되어있다. 첫 번째 화면은 도시를 떠도는 개의 모습을 비춘다. 마치 슈퍼 마리오처럼 땅을 오르내리며 목표물을 찾는 ‘플랫폼’ 게임 규칙의 개 캐릭터는 맵 전체를 뛰어다니는 조작을 통해 흩어진 목표물을 획득한다. 그리고 두 번째 화면은 첫 번째 화면을 더 넓게 조망하는 구도인데,  개 캐릭터를 플레이하는 첫 번째 화면의 동일한 조작으로 먹이 모양의 퍼즐 게임이 펼쳐진다. 게임의 결과는 세 번째 화면에서 소셜 미디어 형태로 표현된다. 같은 시리즈의 <피드 III + IV> 역시 동일한 조작이 다른 게임의 시점을 관통한다. 식물에 포커스한 식물의 관점과 이를 먼 곳에서 바라보며 하천 주변 경관을 모두 담는, 어찌보면 인간일 수도 있는 또 다른 존재의  관점 화면으로 나뉘어 보여진다. 이러한 구성에서 작가가 고민했던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의 감각이 게임에서 보여지는 시점과 행위의 비대칭적인 구조를 통해 드러나게 된다. 

<코드&카토그래피>에서는 플레이어는 다양한 시점의 지도를 이용하여 이동한다. 마치 ‘울티마’나 ‘드래곤퀘스트’ 같은 롤플레잉 게임에서 미지의 지역을 탐험하며 숨겨진 길을 찾는 것과 유사하지만, 이 게임은 캐릭터가 지도 위에서 전투를 하거나 강해지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게임은 세계를 탐색하는 행위 그 자체에 주목하며, 서로 다른 시점을 가진 각각의 지도는 각자의 탐험 규칙을 담아낸다. 플레이어는 세계의 규칙을 파악하며 이동하고, 동시에 이 움직임이 다른 존재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확인하게 된다. 룹앤테일은 다양한 존재가 가진 각자의 세계관을 시점과 행위를 교차해 탐색하고, 시각적인 요소로서의 게임 시점을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의 ‘관점’으로도 접근하고 있다. 

게임으로 ‘경험’을 플레이할 수 있을까? 게임은 전시장이라는 특별한 공간에 위치하면서 새로운 맥락을 얻는다. 작품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게임에 참여 해야 하지만, 관객이 이미 가지고 있는 이해나 수행 능력이 작품과 맞지 않을 수 있다. 이는 게임이 튜토리얼을 통해 조작방법과 규칙을 소개하는 것처럼, 전시장에서도 감상을 위한 튜토리얼이 수반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작품으로의 진입 장벽이 두터워지게 되면 작품과의 거리를 발생하면서 결과적으로 감상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이는 게임이라는 매체가 전시될 때 가지는 한계이기도 하다. 이러한 한계는 짧은 시간동안 누구나 할 수 있는 규칙을 작업에 선택하거나 이미 널리 알려져 튜토리얼이 필요 없어지는 규칙을 차용하는 방법으로 해소될 수 있다. 

룹앤테일의 《다리 밑, 0시, 알아봄》에서 작가는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하고,익숙한 게임 문법을 통해 누구든 작가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함께 고민하여 참여할 수 있다. 작가의 경험은 게임 속에서 다양한 이미지와 오브젝트로 형상화되며, 설계한 규칙 또한 말로써 다 전달하지 못하는 복합적인 자신만의 이야기를 전하는 방법이 되었다. 플레이어는 자신에게 허용된 행위를 토대로 시점을 획득하고 데이터가 처리되는 전체적인 진행을 따라 작가 자신이 되어보거나, 아니면 작가의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되기도, 아니면 그 외의 시점을 경험하기도 한다. 관객 또는 플레이어는 게임을 매개로 하여 작가와의 소통에서 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

4. 작가를 떠나 관람객에게 _ <또 다른 ‘경계 산책자’에게로>, 이다영

룹앤테일은 2023년 8월 탈영역우정국, 9월 아트잠실, 10월 제로원에서 각각 다른 작품과 방식으로 탄천에서의 ‘경계 산책’을 풀어내는 전시를 선보였다. 그 중 8월에 탈영역우정국에서 진행한 전시 《로(Ro)》를  《다리 밑, 0시, 알아봄》과 함께 관람객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로(Ro)》는 플레이어가 게임을 통해 획득한 ‘한밤중 탄천을 산책하면서 있었던 이야기’를 대화형 인공지능 ChatGPT에게 들려주고, 탄천에 살고 있는 존재들에 대한 도시괴담을 만들게하는 메커니즘의 아트게임 전시이다.9 전시의 자세한 내용은 작가의 전시글을 통해서 볼 수 있다. https://loopntale.com/urbanlegend/ 작가가 탄천에서 발견한 이야기를 전달하면 인공지능이 도시 괴담으로 생성하는 게임이라니, 전시를 관람하기 전에 문득, ‘괴담은 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졌다. 많은 괴담 연구에서 밝혔듯이 괴담의 생성과 전승은 사람들의 심리 기저에 있는 현실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서 기인한다. 예를 들면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준 사건·사고나, 억압과 통제가 작용하는 군대나 학교와 같은 장소, 또는 아직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미지의 어떤 것이 야기하는 사람들의 두려움에서 이야기가 생성되고, 구전(현대에는 소셜미디어)을 통한 사람들간 상호작용으로 이야기가 덧붙여 지면서 밖으로 퍼진다. 한 때, 도시에서 유행하던 괴담은 홍콩할매, 빨간마스크 처럼 ‘공포의 인물’이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일상의 공간에 여러 사람들의 경험과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괴담의 장소’가 중심이 되는 경향이 크다고 한다.10<뉴미디어에 나타난 현대괴담의 장소성 연구>(오정미, 한국구비문학회, 2022) 앞서 언급했듯, 자정의 탄천은 낯설고 두렵다. 그 장소에서 살고 있는 비인간 존재는 우리와 도시를 공유하면서도, 다른 시간과 공간의 층위를 영위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앞에 가시적으로 명확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그들을 향한 괴담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전시 내 게임 작품 <위험한 오피스>와 <평화로운 황무지>를 플레이하다보면, 게임 공간 내에서 내 캐릭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위험한 오피스>는 계속 이어지는 방과 방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문을 열도록 되어 있고, <평화로운 황무지>는 길이 없어서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게 된다. 이러한 게임 공간과 플레이 간의 설계는 우리가 모르는 장소를 처음갔을때 처럼 두려운 감정을 일으킨다. 플레이어는 게임 공간을 헤매이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획득하고, 그 이야기는 인공지능에 전송되어 도시괴담의 재료가 된다. 게임 플레이 끝에 만들어진 이야기는 괴담이지만 무섭게 다가오기 보다는, 그것이 생성되는 과정을 돌아보게 된다. 오히려 ‘이 이야기가 생성되는 과정 그 이면을 알고싶다’는 생각과 함께 게임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로(Ro)》가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과 그 두려움이 이야기로 생성되는 과정을 다루었다면, 그 다음에 전시된 《다리 밑, 0시, 알아봄》은 서로를 알아보게 된 인간과 비인간 존재 간 공존의 방법을 고민하는 전시로 이야기가 확장되었다. 관람객으로서 작가의 이야기 확장 단계를 함께 따라가 본 경험은, 작가가 구축하고자 하는 예술 세계의 맥락이 형성되어 해석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 

탈영역우정국은 동시대 예술의 장소로, 전시 《로(Ro)》에는 새로운 매체에 관심있는 예술계의 사람들이 주로 방문했다. 최근 인공지능에 대한 예술계의 관심도 높아진 터라, 작가와 함께 관련 담론과 작품의 메시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다양한 창작자들이 전시를 찾았다. 반면, 전시 《다리 밑, 0시, 알아봄》를 열었던 아트잠실은 전시 공간이 아파트 단지의 상가 건물에 있어, 관람객 중에는 동네 주민들이 있었다. 특히, 주변 학원가 학생들이 많이 찾았다. 탈영역우정국이나 제로원에서는 전시를 통해 동시대에 함께 활동하는 예술계의 사람들과의 교류가 많았다면, 아트잠실은 동네 주민, 어린이, 중고등학생, 학부모의 방문으로 의미가 있는 장소였다.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의 의사소통 모델을 기반으로 ‘창작자 – 작품 – 전시 – 관람객’을 살펴보면, 관람객에 따른 반응의 다양성과 그 이유를 분석해볼 수 있다.11 1960년 야콥슨이 새롭게 도입한 이 개념은 의사소통에 중요한 전제 조건을 설명한다. 기존의 의사소통 모델에서 ‘맥락’과 ‘코드’를 추가한 개념이다. ‘맥락’은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는 상황, 문화, 장소, 시대 등을 이야기한다. ‘코드’는 메시지를 표현하는 기호체계를 의미한다. 서로 상이한 코드에서는 메시지를 전달받기 어려우며, 발신자의 코드에서 수신자의 코드로 번역의 과정이 필요하다. 『매체의 역사 – 동굴벽화에서 가상현실까지』 (저.안드레아스 뵌, 안드레아스 자이들러, 역.이상훈, 황승환, 문학과지성사, 2020) 아래 도식에서 발신자는 작가로, 수신자는 관람객으로 치환해서 생각해본다면, 작가와 관람객이 공유하는 ‘맥락’과 ‘코드’가 많을 수록 메시지는 더 수월하게 전달된다는 점을 도출해볼 수 있다.

로만 야콥슨의 의사소통 모델

탈영역우정국에서 만난 관람객들과 작가는 주로 ‘동시대 예술’에 대한 맥락과 코드를 공유할 것이다. 발전하는 기술 속에서 변화하는 예술의 형태와 표현 방법, 그리고 그에 대한 여러 담론이 도출되는 상황(맥락)과 그것을 설명하는 예술계의 언어(코드)를 공유하며, 그 속에서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받는다. 한편, 아트잠실을 찾은 지역 주민들은 전시 공간과 가까운 ‘탄천 생태경관보전지역’에 대한 이해가 높아 게임 속에 등장하는 공간과 상황에 보다 더 공감할 수 있다. 이 맥락이 작가가 탄천과 가까운 장소에서 전시를 한 이유지만, 실제 찾은 관람객은 지역 주민들 보다는 룹앤테일의 ‘아트게임’에 관심있어서 방문한 관람객이 더 많았다. 이렇듯 메시지의 발신자인 작가가 의도하고 제공하는 전시의 맥락도 있지만, 수신자인 관람객의 입장에서 형성되는 맥락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룹앤테일의 김영주 작가는 2017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융합예술센터에서 진행한 아트게임 창작 워크숍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한 게임메이킹>에서 “누구나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플레이어가 게임 플레이에서 할 수 있는 행동과 규칙을 설계하며, 마지막에는 서로의 게임을 함께 플레이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8회에 걸쳐서 진행했다. ‘누구나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음’은 게임이 어떤 특정 세대나 계층이 점유하는 매체가 아닌, 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서 이야기될 수 있어야 함을 시사하는 말임과 동시에,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게임을 이야기하지 않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룹앤테일의 교육 활동은 작품이 전시를 통해서 관람객(플레이어)과 만나는 것을 넘어서서, 작가의 창작 세계가 형성하는 맥락과 코드를 공유하고 이해할 수 있는 관람객의 층위를 넓히고, 또다른 현실이 된 게임을 사회문화적 현상에 대한 사유의 형태로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활동이다. 룹앤테일의 장소를 바라보고, 이야기를 발견하는 관점이 더 많은 ‘경계 산책자’에게로 확장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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