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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괴담을 생성하는 게임 Games That Generate Urban Legends

    괴담을 생성하는 게임

    October 2023.

    웹진 <즐거운 곤란> 수록

    Generating Urban Legends Through Gameplay

    October 2023.

    Published in Joyful Trouble Webzine

    자정이 지나고 탄천 주변을 산책하는 버릇은 판데믹 기간부터 시작되었다. 잠시나마 마스크를 쓰지 않으려고 인적 없고 정돈되지 않은 그곳을 걸어 다녔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곳은 “생태경관보전지역”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으로 무성한 수풀과 공사 현장때문에 산책길 밖으로는 사람이 들어서기 힘든 곳이었다. 인간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시작된 산책길은 한동안 미지의 대상들로 두려운 공간이기도 했다. 갑자기 수풀에서 들려오는 바스락 소리와 본 적 없는 벌레들, 알 수 없는 울음소리들, 파충류인지 양서류인지 모를 것들이 가로등의 어스름한 빛 아래로 들어왔다.

    그곳에서 개 한 마리를 마주쳤다. 유기견으로 보이는 그를 매일 같은 장소에서 만나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다른 미지의 존재들과는 다르게 그는 조심스럽게 거리를 좁혔다. 그에게 먹이를 가져다줬고 그곳에서 한두 시간을 머물렀다. 빠르게 지나가는 자전거 몇 대 외에는 인적이 거의 없는 시간이었다. 몇 주 지나자, 그는 밥을 먹고 나서도 수풀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누워서 꾸벅꾸벅 졸았다. 가끔은 쓰레기를 주워 와서 혼자 놀기도 했다. 그를 만나면서 수풀 속의 고양이들, 너구리들, 고라니들이 먹이를 찾으며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천의 범람으로 우리가 만나는 장소가 흔적도 없이 물속에 잠겨 있었을 때 수면에서 들리던 알 수 없는 소리와 그림자들, 물이 빠지고 난 후 곳곳에 찍힌 개의 발자국에서 느꼈던 안도감. 하나둘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던 낯익은 모습들. 그는 몇 주씩 보이지 않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왔다. 바닥에 놓아둔 물이 금세 얼어붙는 한파가 왔을 때도 그곳에 있었다. 그가 무사히 하루를 보내고 오늘도 나와 있을까. 그 산책길은 또 다른 형태의 두려움과 죄책감의 장소가 되었다.

    룹앤테일은 게임이 사람들과 대화하는 법에 대해 연구하고, 주제에 관해 게임을 통해서 전달하려고 고민한다. 플레이의 과정을 통해서 공유하고자 하는 질문들이 전달되고 플레이어 각자가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플레이의 단계를 거치며 작은 성취감을 느끼고 위로를 얻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특히 일상과 단절되는 게임 플레이가 아니라 일상의 문제들을 게임 안에 담고자 한다. 몇 년 동안 지속된 산책의 경험들은 자연스럽게 우리가 만드는 게임 속으로 들어왔다. 

    온갖 추측과 어두운 상상이 현실의 이미지와 겹쳐 이야기를 만들게 되는 밤의 탄천 지역을 방문하면서, 실체가 없지만 다각도의 해석이 가능한 도시괴담들을 떠올렸다. 우리는 대화형 인공지능 ChatGPT에게 이 한밤중의 산책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수풀 속에서 나타나는 존재들에 대한 도시괴담을 함께 만들었다. 믿기 힘든 일화들을 간략하게 서술하는 로어 형식의 글은 가짜뉴스만큼이나 설득력 있게 쓰여야 하고, 뭐든 그럴법하게 써내는 ChatGPT에게 이 형식을 습득하도록 했다.

    우리는 [Ro(로)]라는 전시를 구성하면서 네 개의 방과 세 개의 게임을 만들었다. 오피스 빌딩을 배경으로 한 “위험한 오피스”와 도심의 개발제한구역을 배경으로 한 “평화로운 황무지”를 돌아다니며 이야기의 조각들을 수집하면 “허브” 공간의 인공지능(ChatGPT)이 실시간으로 그에 해당하는 괴담을 만들어 주는 형식이었다. “출입금지구역”에서는 도슨트 역할을 하는 ChatGPT와 대화할 수 있었다. 

    전시 지시사항 이미지
    전시 관람을 위한 지시사항: 위험한 오피스, 평화로운 황무지, 허브, 출입금지구역 순으로 플레이하기를 권장한다.
    위험한 오피스 이미지
    “위험한 오피스”: 아침 10시에 A가 출근한 회사. 복도를 없애고 대신 모든 방을 문으로 연결한 오피스 빌딩. 회의실을 찾아가는 인턴이 마주치는 괴담같은 노동자의 공간들.
    평화로운 황무지 이미지
    “평화로운 황무지”: 밤 10시에 A가 도달한 곳.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개발제한구역에서 나무와 풀을 베고, 돌을 깨서 길을 만들 수 있다. 알 수 없는 생명체들의 속삭임이 존재한다.

    탄천의 산책길은 “평화로운 황무지” 게임 씬에 담겨있었다. 그곳에서 다양한 생명체들과 마주치면 다음과 같은 로어 형식의 괴담을 얻을 수 있다.

    “어떤 돼지는 굉장히 똑똑한 나머지 사람들의 말을 엿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말하는 부위가 자기 몸 어디쯤인가를 가끔 생각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똑똑한 소에게서도 간혹 일어나는 현상입니다.”“고라니의 울음소리가 인간의 비명과 흡사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간혹 아주 청아한 울음소리를 가진 고라니도 있는데 비명 같은 울음소리를 배우기 위해 인간이 사는 곳 가까이 오기도 합니다.”
    “목을 잘라낸 뒤에도 머리 없이 10분 정도를 뛰어다닐 수 있는 닭의 이야기는 상당히 유명합니다. 다만 그런 일이 있을 때 닭의 머리를 만지는 것은 위험합니다. 정확히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는 알려져있지 않지만, 그 경험을 했던 사람들은 다시는 닭고기를 먹지 못했습니다.”“누군가 개구리 한 마리를 잡아서 집으로 데려갔는데 얼마 안 가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깊이의 수조에서 개구리가 없어졌습니다. 그 뒤부터 그는 밤마다 개구리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한 달 뒤 그는 말라비틀어진 개구리를 침대 매트리스 속에서 발견했습니다.”
    “새로운 크래커를 개발하던 누군가가 크래커를 씹을 때 달팽이를 밟게 되면 나는 소리가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시도는 성공을 거두었고 그 크래커는 특히 비 오는 날 많은 매출을 올렸다고 합니다.”“버려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유기견들만이 인간에게 발견될 수 있다고 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하면 사람들은 점점 그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한 채 아예 없다고 판단한다고 합니다.”
    “더 이상 도심에서 잠자리가 잘 눈에 띄지 않는 이유는 5G 전자파 때문이라는 것이 연구 결과로 밝혀졌지만, 루머로 치부되었습니다.”“폐쇄된 재활용품처리장에는 누군가 버리고 간 화분이 하나 있었는데 실내에 두고 간 바람에 비가 올 때도 물을 마실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 이 화분을 밖으로 옮겨 놓았는데 인간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곳의 벤치에 어느 노숙자가 누워있었습니다. 그가 움직이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반드시 우산이 펴져 있다고 합니다. 하천 범람으로 잠겼던 그곳의 물이 빠지고 나서 보니 그는 그대로 우산을 쓴 채 누워있었다고 합니다.”“도심의 개발제한구역에는 유기된 동물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 구역으로 인간이 들어올 때 음식을 얻어먹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해안가에 37일 동안 장마가 이어지면서 인간의 통행이 금지되었는데 그들이 무엇을 먹고 살아남았는지는 미스터리입니다.”

    비 오는 날 달팽이를 밟았을 때 나던 소리, 골목길에 남아있는 핏자국에서 얼마 전 마주친 고양이를 떠올리는 것, 아슬아슬하게 차도를 걸어가는 비둘기를 마주쳤던 것, 어릴 적 잡아 온 개구리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던 기억, 짧은 줄에 묶인 개의 빈 물그릇을 보았던 것, 말라 죽은 화분 식물을 버렸던 것 등 누구나 경험할 수 있거나 기억하는 것들에 대한 감정들이 이 짧은 괴담들 안에 담겨있다.

    허브 이미지
    “허브”: 인공지능 Ro(로)와 게임을 플레이한다.
    플레이어가 그를 한 번 움직이게 할 때마다 그는 위험한 오피스나 평화로운 황무지에서 A가 겪은 일에 대해 자신이 재구성한 괴담 하나를 들려줄 것이다.

    플레이어들은 A라는 캐릭터를 이동시키면서 길을 찾는다. 목표지점으로 가기 위해 어떤 문을 통과할지를 고민하거나 나무를 베어버리면서 이동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많은 존재들의 흔적은 일종의 이야기 조각이 된다. 이야기 조각을 찾아내는 것에서 재미를 느낄 수도 있고 인공지능이 그 조각들을 어떻게 변형하는가를 관찰하는 것에 집중할 수도 있다. “위험한 오피스”와 “평화로운 황무지”에서 A가 겪었던 일들을 아주 먼 훗날 “허브”에 남은 인공지능 Ro(로)가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것처럼 누군가 어느 시점에서 겪었음 직한 사건들이 플레이를 통해 발견한 이야기의 조각들 사이에서 불쑥 찾아오기를 바랐다. 

    특정한 경험이나 이야기가 다른 버전으로 재생산되는 괴담은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서 다양한 층위에서 현실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도구로 작동할 수 있다. 도심에서 살아가는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 관계 속에서 부당하다고 느껴졌던 일들은 실제와 상상의 경계에서 괴담이 된다. 괴담을 발생시키는 게임 플레이를 통해, 플레이어들이 각자의 일상적인 경험을 돌아보게 하고자 했다. 어떤 것을 느낄 새도 없이 지나가 버렸을 수도 있는 순간들 – 인간이 아닌 생명종들을 조우한 그 순간들에 대하여.

    Game that creates urban legends

    The habit of walking around Tancheon after midnight started during the pandemic. I walked in deserted and unkempt areas to avoid wearing a mask for a while. I found out sometime after that the place was called an “ecological conservation area,” difficult for people to enter beyond the walking path due to dense vegetation and construction sites. For a while, The path I took to avoid human encounters was a frightening space filled with unknown subjects. Sudden rustling sounds from the bushes and nameless insects, unknown cries, reptiles or amphibians crawling under the dim light of the street lamps.

    I encountered a dog there. She seemed like a stray dog, and I encountered her in the same place every day. Unlike other unseen beings, she approached me cautiously. I brought her food and stayed there for an hour or two. Besides a few passing bicycles, there were hardly any people around. After a few weeks, she didn’t disappear into the bushes even after eating but lay there nodding off. Sometimes she would pick up trash and play alone. By meeting her I realized that cats, raccoons, and elks were in the bushes watching us while looking for food.

    The unknown sounds and shadows were heard and seen from the surface when the place we met flooded and completely submerged underwater, I felt relieved seeing the dog’s footprints scattered everywhere. The familiar sights that returned one by one. She was absent for weeks at a time but eventually returned. She was there even when the water froze quickly during a cold spell. Will she safely spend another day and be there today? That walking path became a place of another form of fear and guilt.

    Loopntale researches how games interact with people and strives to convey the topic through games. They prefer to deliver questions to be shared through the process of play, where players find their answers. They also hope players will feel a sense of accomplishment and comfort through the stages of play. Especially, rather than games that disconnect from everyday life, they aim to incorporate everyday issues into the game. Experiences from years of walking naturally entered the games we create.

    While visiting the Tancheon area at night, where various speculations and dark imaginations overlap with the image of reality, I recalled urban legends that have no tangible evidence but are open to multiple interpretations. We shared the story of this midnight walk with the conversational AI ChatGPT and created urban legends about beings that appear in the bushes. Lore-style narratives describing unbelievable anecdotes need to be written as convincingly as fake news, and we trained ChatGPT that can just do to adopt this style in writing.

    While curating the exhibition “Ro,” we created four rooms and three games. In “Dangerous Office,” set in an office building, and “Peaceful Wasteland,” set in a downtown development-restricted area, players collect fragments of stories as they explore and in the “Hub”, an artificial intelligence (ChatGPT) generates corresponding urban legends in real-time with them. In the “Restricted Area,” players could converse with ChatGPT, who acted as a docent.

    [Picture 1]
    Instructions

    1. Enter each area in order.
    2. Pretend not to see non-human entities if you encounter them.
    3. The Restricted Area is off-limits.
    4. Engage with Ro and play the games.

    Exhibition Guideline: It is recommended to play in the following order: Dangerous Office, Peaceful Wasteland, Herb, Restricted Area.

    [Picture 2]
    “Dangerous Office”: A company where A starts work at 10 a.m. Instead of corridors, an office building where all rooms are connected by doors. Interns on their way to the meeting room encounter workers’ spaces that are eerie and resemble urban legends.

    [Picture 3]
    “Peaceful Wasteland”: A place reached by A at 10 p.m. In order to reach the destination, one can cut through trees and grass, and break rocks to make a path in the development-restricted area. Whispers of unknown creatures exist.

    The Tancheon walking path was included in the “Peaceful Wasteland” game scene. If you encounter various creatures there, you can obtain the following lore-style urban legend:

    “Some pigs are remarkably intelligent, able to eavesdrop on people’s conversations. They sometimes ponder on which part of their body people are talking about. This phenomenon occasionally occurs even in clever cows.”

    “It is well known that the cry of an elk is similar to a human scream. Occasionally, there are elks with very clear cries, and they come near human settlements to learn scream-like cries.”

    “The story of a chicken being able to run around for about 10 minutes even after its head is cut off is quite famous. However, it is dangerous to touch the chicken’s head when that happens. It is not known what exactly happens, but those who did it never ate chicken again.”

    “Someone captured a frog and took it home, but shortly after, the frog disappeared from a tank so deep that it couldn’t possibly escape. Since then, he says he couldn’t sleep at night because of the frog’s croaking. A month later, he found a dried-up frog inside the mattress.”

    “Someone developing a new cracker thought it would be great if it made a crunching sound like stepping on a snail when chewed. His attempt was successful, and the cracker saw particularly high sales, especially on rainy days.”

    “It is said that only recently abandoned stray dogs can be found by humans. If they can’t find their way home for too long, people gradually stop being aware of their existence and consider them completely gone.”

    “The reason why bedbugs are no longer noticeable in urban areas is rumored to be due to 5G electromagnetic waves, although research findings have debunked this.”

    “In a closed recycling facility, there was a pot that someone had discarded, but even when it rained, it couldn’t drink water because it was left indoors and out of reach of the wind. One day, someone moved this pot outside, but it wasn’t a human.”

    “A homeless person was lying on this bench. No one witnessed him moving, but on rainy days there’s always an open umbrella above him. After the water receded from the flooded river, he was found lying there, still under the umbrella.”

    “In the downtown development-restricted area, there are abandoned animals. They managed to survive because they could get food when people entered the area. Once it became a restricted area during a 37-day monsoon season, and how they survived without food remains a mystery.”

    The sound made when stepping on a snail on a rainy day, recalling a cat encountered recently from the bloodstains left in the alley, encountering a pigeon walking precariously on the road, memories of not knowing the fate of the frog caught in childhood, seeing an empty water bowl of a dog tied to a short leash, discarding dried-up potted plants, and so on — all these emotions related to experiences and memories that anyone can have are contained within these short urban legends.

    [Picture 4]
    “Hub”: Play with the artificial intelligence Ro. Each time the player moves him, he will tell one urban legend that he has reconstructed about what A experienced in the Dangerous Office or Peaceful Wasteland.

    Players navigate as the character A, deliberating on which door to pass through or whether to cut down trees to reach the destination. Along the way, traces of many beings encountered become fragments of a story. Some may find enjoyment in discovering these story fragments, while others may focus on observing how the artificial intelligence transforms them. Just as the AI Ro constantly reproduces events A experienced in the “Dangerous Office” and “Peaceful Wasteland” in “Hub,” it was hoped that events that would be experienced by someone at some point would unexpectedly emerge among the story fragments discovered through play.

    Reproducing specific experiences or stories in different versions as urban legends can function as tools for interpreting and understanding reality across various layers beyond personal experience. Events perceived as unfair within relationships between humans and non-human beings in the city become legends at the boundary of reality and imagination. Through gameplay that generates urban legends, we aimed to prompt players to reflect on their own everyday experiences. Moments that may have passed unnoticed and unfelt- about the encounters with non-human species.

  • 대화의 방법들 Modes of Conversation

    익명의 가마우지들과 연결되기  

    December 2021

    <그래비티 샤워> (기획 유지원) 수록

    Connecting with Anonymous Cormorants

    December 2021

    Included in Gravity Shower (curated by Yujewon)

    지난 2년동안 일에 관련된 것을 제외하고 내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사람은 꽃집 언니다. 전화 통화나 메시지로 일상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에 익숙해질 수 없는 나 같은 사람이 외출을 거의 하지 못했던 기간동안 새로운 친구를 만들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우리의 대화 주제는 식물의 상태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뿌리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식물들의 상태는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이파리 하나가 색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든가 반점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가 식물을 죽일뻔한 적이 많았다. 겉흙을 만져보고 속흙도 찔러보고 전체적인 식물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잡아내기 위해 자리를 계속 옮겨본다. 

    휘커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매달 잎사귀를 하나씩 떨굴 때마다 꽃집을 응급실처럼 드나들었다. 꽃집 언니와 나는 빛의 세기나 습도, 환풍 같은 요소들을 하나하나 테스트해보면서 서로가 파악한 정보를 공유했다. 휘커스를 안고 문을 나서는 나에게 꽃집 언니는 당분간 그냥 지켜봐달라고 부탁했다. 지켜본다라는 것은 무언가를 해주고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것을 포함한다. 휘커스가 5개월 만에 갑자기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큼지막한 새 잎을 다섯 개나 달고 있는 사진을 보고 꽃집 언니는 몹시 기뻐했다. 

    몇 개월 전부터 꽃집 언니는 나에게 식물을 하나씩 주면서 같이 키워보자고 제안했다. 꽃집에 자주 드나들며 식물의 상태를 서로 공유하는 일련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는 주기적인 모임도 없고 이름도 없는 이 집단에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레벨업을 한 기분이었다. 매주 새로운 종이 꽃집에 들어오고 일부는 소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집으로 간다. 한 장소에 모인 적 없는 사람들이 가진 정보는 꽃집으로 모인다. 유칼립투스 화분을 열 두 개 놓을 수 있는 사람과 나는 다른 환경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각기 다른 종을 데려가고 왜 칼라디움이 유독 우리집에서 잘 자라는지에 대해 분석한다. 이 소집단의 사람들은 이름도 모르고 서로를 부르는 호칭도 없지만 식물들에 대한 정보 공유 속에 각자의 일상이나 과거에 대한 이야기들이 스며든다. 조언과 더불어 위로와 격려가 오고가는 이 집단은 구성원들의 정확한 정보 없이 일시적으로 모였다가 다시 흩어진다. 

    정기적인 모임에 대한 부담이 있는 상황에서 워크숍을 기획하면서 나는 온라인에서 익명의 사람들이 대화를 주고받을 때 나오는 자유로움과 긴장감, 그리고 그들이 위치하는 현실 공간에서의 안정감을 어떻게 이용해볼지 생각했다. 이름도 나이도 얼굴도 모르는 낯선 여성들이 모여서 각자가 각자의 공간에서 가지고 있을 우울함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워크숍을 시작할 때 신청자들에게 구글독스 링크가 전달되었다. “익명의 가마우지”와 같은 이름으로 구글독스에 접속한 사람들은 완전히 비어있는 새하얀 페이지에 거리낌없이 흔적을 남겨주었다. 누가 어떤 글을 썼는지 모르고 한 사람이 문장을 채 끝맺기도 전에 다른 사람이 그 문장을 이어가기도 한다. 개별적인 이야기들은 각기 너무나 달랐는데 그것이 하나의 줄기가 되어서 흘러갔을 때 우울함의 다양한 이유와 양상들 아래에 공통적으로 깔려있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하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개인의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들과 함께 무질서하게 매시업되는 이 형식을 지키면서 매번 주제에 맞게 진행방식을 가다듬어갔다. 시작할 때 공유하는 아홉가지 규칙*을 만들고 이모지로 이루어진 인벤토리나 소그룹을 나누어 각기 다른 구글독스 링크로 들어가는 방식들을 실험하면서 룹앤테일은 이것을 독게임(DocGame)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내가 속한 룹앤테일은 게임이 가지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기반해서 다양한 장르와 플랫폼을 활용하여 작업을 한다. 2020년 2월에 전시 일정으로 귀국했다가 기약없이 한국에 머물게 되면서 룹앤테일의 작업들도 상황에 대처할 방법을 찾아야했다. 다수의 참여자들이 개인 스마트폰으로 전시장의 가상세계에 접속해서 함께 플레이하는 게임은 전시 오픈 직후 베이징이 통제 되면서 빈 공간에 몇 달간 남아있었다. 플레이어들이 현실 공간에서 물리적으로 함께하는 연결성을 선호했던 작업들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고 우리는 그들이 게임에 대해 해석 혹은 해석하지 않는 리액션들을 직접적으로 보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는 거의 외출을 하지 않았고 작업실에는 화분 식물이 하나씩 늘어갔다. 나는 줄곧 독일에 두고 온 분홍 장미를 생각했고 그가 화분 안에 있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올해 룹앤테일은 상황이 나아지든 그렇지 않든 온라인으로만 작업을 공개하기로 계획했다. 그중 하나는  팬데믹의 락다운 기간 중에 커머셜 빌딩에 남아있는 화분 식물들을 돌보는 게임이었다. 플레이어는 게임 링크에 접속해서 말 많은 인공지능을 도와 빌딩 안의 화분 식물들을 돌본다. 식물들의 상태가 수치로 표시되기는 하지만 인간-플레이어는 그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채로 인공지능의 분석에 맡긴다. 인간-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것은 식물을 보고 듣고 만지는 행위를 대체하는 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그것은 한동안 아무 행위도 하지 않고 식물을 그저 관찰하며 인간과는 다른 표현방식을 가진 식물을 이해하려고 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Garden of Rules, 2021

    인간이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반려종에 대해 책임을 다하려는 것은 다음 게임에서도 플레이어의 가장 중요한 행위가 되었다. 가상세계에서 살고있는 누군가가 사라진 인간-관리자를 찾아달라는 트윗을 남긴다. 미래의 생물종을 연구하는 인간-관리자가 만든 세계에서 그가 외부와 접촉할 수 있는 길은 시뮬레이션에 내장된 트위터 공유 기능 뿐이기 때문이다. 네 개의 구역에서 살고 있는 실내생물, 공중생물, 수중생물, 육상생물은 각기 필요로하는 것이 있는데 인간-플레이어가 게임 링크에 접속하여 그것을 줄 수 있다. 플레이어들이 게임 세계 안의 정보를 모으고 퍼즐을 풀어 구역을 오픈하거나 생명체들을 돕는 등 유의미한 행위를 한다면 그 내용과 장면의 이미지가 캡쳐되어 트위터로 자동 전송된다. 무기명의 인간-플레이어들 각자가 얻은 정보와 행위의 결과들은 게임이 진행된 3일 동안 트위터 피드에 조금씩 쌓여갔다. 그리고 마지막 날 인간-관리자의 실종에 대한 전말이 드러났다. 우리는 미래의 생물종에 대한 연구를 인간을 포함한 반려종에 대한 연구로 해석했고 도시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에 적응하며 진화하는 생명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화분 식물, 지하철역 비둘기, 수족관 잉어, 주차장 길고양이와 인간이 함께 살면서 가지는 특성을 은유하면서 게임 플레이를 통해 도시의 반려종들이 소환되기를 바랐다. 

    Mechanimal, 2021 

    내년에 우리는 어떤 게임을 통해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을까. 상황이 나아진다 하더라도 아무 일도 없었던 듯 2년 전에 사용했던 대화법으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 같다. 각자가 최대한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상태를 찾되 그것이 고립이 아닌 느슨한 연대의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온라인에서 실험했던 커뮤니케이션 방식들을 계속 발전시키고자 한다. 어떤 상황이 오든 우리는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함께 이야기할지 고민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것이다. 게임은 대화하는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대화는 상대를 받아들이기 위해 이해해보려는 노력을 포함한다. 나의 규칙을 알리고 당신의 규칙을 파악하고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있는 지점을 고민하는 게임이 올해의 마지막 프로젝트로 예정되어 있다. 대화의 과정이 언제나 자의적인 해석과 오해의 소지를 가지고 있는 이상 다양한 게임의 대화법을 상상하고 시도해보는 것이 룹앤테일의 과제가 될 것 같다. 

    ———-

    *독게임 DocGame 아홉가지 규칙 

    1) 자유롭게 이야기해주세요. 언제든지 질문하셔도 좋습니다.

    2) 구글독에서는 로그인상태보다 익명의 동물이 되면 좋습니다.

    3) 자신이 어떤 글을 썼는지 이모지로 표시해도 되지만 밝히지 않아도 됩니다.

    4) 진행 중에 불편하게 만드는 상황이나 특정한 표현이 있다면 모두에게 바로 공유해 주세요.

    5) 게임마스터의 주요 공지는 코멘트로 표시됩니다. 오른쪽에 코멘트를 보시면 좋습니다.

    6) 이모지 인벤토리는 모두가 공유하는 것으로 이모지를 잘라내기/붙여넣기해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7) 자유롭게 편집하셔도 됩니다. 공유하고 싶은 이미지나 사운드 링크도 좋아요.

    8) 규칙은 합의하에 바뀔 수 있고 버려지거나 추가될 수 있습니다.

    9) 게임마스터가 던지는 질문은 놀이의 규칙과 같습니다. 참여자분들이 바꿀 수도 있어요!

    Connecting with Anonymous Cormorants

    Over the past two years, aside from work-related conversations, the person I’ve had the most conversations with is the owner of a flower shop. It’s fascinating that I, someone who isn’t accustomed to exchanging daily stories over phone calls or messages, made a new friend during a period when I could hardly go out. Our conversations mainly revolved around how to assess the condition of plants. Since the most crucial part, the roots isn’t visible, it’s not easy to read the state of plants. I’ve often overlooked slight changes in leaf color or faint spots, nearly killing them as a result. I’ve continuously moved around to touch the soil surface, probe the subsoil, and capture subtle changes in the overall expression of the plants.

    Every month when the Ficus shed a leaf for unknown reasons, I frequented the flower shop like an emergency room. The flower shop unnie and I tested factors like light intensity, humidity, and ventilation, sharing the information we gathered. As I left with the Ficus in my arms, she asked me to simply watch over it for a while. Watching over it meant suppressing the desire to do something. She was thrilled to see a photo of the Ficus suddenly starting to grow after five months, with five large new leaves.

    For the past few months, the flower shop unnie has been giving me plants one by one, suggesting that we grow them together. There was a group of people who frequented the flower shop, sharing the status of their plants with each other. I realized I had been accepted into this group, with no regular meetings or even a name. It felt like leveling up. Every week, new varieties of plants come into the flower shop, and some are taken to the homes of people in the group. Information from people who have never gathered in one place is gathered at the flower shop. Since I can provide different environments from the person who can accommodate twelve pots of Eucalyptus, we each bring different varieties and analyze why Caladium thrives particularly well in our home. Despite not knowing each other’s names or using any titles, stories of daily life or the past seep into the sharing of information about the plants. Along with the exchange of advice, comfort, and encouragement, this group gathers temporarily without any specific information about its members and then disperses again.

    Feeling burdened by the idea of regular meetings, I planned a workshop to capitalize on the freedom and tension that arise when anonymous people converse online, as well as the sense of stability they feel in their physical surroundings. I wanted to explore how unfamiliar women, without knowing each other’s names, ages, or faces, could gather to discuss the melancholy each may carry within their individual spaces. At the start of the workshop, participants were provided with a Google Docs link. People accessed the Google Docs under the name like “Anonymous Cormorant” and left traces on completely blank pages without hesitation. Without knowing who wrote what, one person would begin a sentence only to have another continue it before it was completed. Though each narrative was distinct, as they converged, a common thread emerged beneath the various reasons and manifestations of melancholy. While sharing their own stories, participants realized they were also part of a collective narrative. Embracing this format where individual stories meshed together in a disorderly fashion, I refined the approach with each session, experimenting with nine shared rules* at the outset and dividing participants into subgroups with emoji-based inventories, each entering different Google Docs links. Through these experiments, Loopntale coined the term “DocGame” for this format.

    Loopntale, which I’m part of, utilizes various genres and platforms based on the communication methods inherent in gaming. Returning to South Korea in February 2020 for an exhibition schedule and then being forced to stay indefinitely, I had to find ways to adapt to the new situation with Loopntale’s works. The game that allows multiple participants to access the virtual world at the exhibition through their smartphones to play together was left abandoned in empty spaces for months right after the exhibition opened, as Beijing came under lockdown. Works that preferred physical connectivity among players in real space were no longer feasible, and we could no longer directly observe their reactions, whether they interpreted the game or not. We hardly went out, and our workspace gradually filled with potted plants. I often thought of the pink rose I left behind in Germany and felt guilty about it being confined to a pot.

    This year, Loopntail planned to showcase the work online regardless of whether the situation has improved or not. One of them was a game where players took care of the potted plants left in a commercial building during the lockdown period of the pandemic. Players accessed the game link to assist a talkative artificial intelligence in caring for the potted plants inside the building. Although the condition of the plants was displayed numerically, the human player entrusted the analysis to the AI without knowing exactly what it meant. The only action the human player could take was to press buttons to replace the act of looking at, listening to, and touching the plants. This process included observing the plants without taking any action for a while and trying to understand plants with expressions different from humans.

    In a situation where humans cannot physically exist, taking responsibility for pets became the most important action for players in the next game as well. Someone living in the virtual world tweets asking for help in finding a missing human-administrator. In the world created by the human-administrator who researches future species, the only way he can interact with the outside world is through the Twitter sharing function embedded in the simulation. Creatures living in four different zones (indoor, airborne, aquatic, and terrestrial organisms) have their own needs, which the human player can fulfill after accessing the game link. If players gather information in the game world, solve puzzles to open zones, or help organisms in meaningful ways, the contents and the snapshot images of the scenes are automatically sent to Twitter. The information gathered by players and the results of their actions accumulated bit by bit in the Twitter feed over the course of three days. On the final day, the full story of the human-administrator’s disappearance is revealed. We interpreted research on future species as research on companion species including humans, and wanted to talk about life forms evolving through the adaptation of coexistence in the city. We hoped to summon urban companion species through gameplay while metaphorically representing the characteristics of potted plants, subway pigeons, aquarium fish, and parking lot cats living together with humans.

    Next year, through what game shall we engage in conversations with people? Even if the situation improves, we may not return to the conversational methods we used two years ago as if nothing had ever happened. We’ll continue to evolve the communication methods we experimented with online, aiming to find states of maximum comfort for each individual while fostering loose forms of solidarity. Regardless of the circumstances, it will always start with considering how, where, and with whom we’ll converse. Because games serve as a medium for conversation which includes efforts to understand others in order to accept them. Planned as this year’s final project is a game where I state my own rules, grasp another’s rules, and contemplate points where both sets of rules can coexist. Considering the inherent subjectivity and potential for misunderstandings in the process of conversation, envisioning and experimenting with various forms of conversation through games seems to be Loopntail’s ongoing mission.

    *9 rules to Docgame

    1. Feel free to talk. You can ask questions anytime.
    2. On Google Docs, it’s better to be an anonymous creature rather than being logged in.
    3. You can use emojis to indicate which text you wrote, but you don’t have to.
    4. If there’s anything uncomfortable or a particular expression that bothers you during the game, please share it with everyone right away.
    5. Major announcements from the Game Master will be indicated in comments. Check the comments on the right side.
    6. The emoji inventory is shared by everyone, so you can use emojis with cut and paste.
    7. Feel free to edit. You can also share images or sound links you want.
    8. Rules can be changed, discarded, or added by consensus.
    9. The questions thrown by the Game Master are like the rules of the game. Participants can change them too!
  • 게임 방송 Let’s Play

    2017

    내가 워크숍 때 언급한 게임들을 한국의 유명한 게임 스트리머들이 다루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게임방송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제이슨 로러 Jason Rohrer, 로버트 양 Robert Yang, 몰레인더스트리아 Molleindustria, 니키 케이스 Nicky Case 등 내가 좋아하는 디자이너들의 게임을 게임방송에서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중 최고는 로버트 양의 게임을 하면서 줄곧 당황한 한 유명 스트리머가 결국엔 게임을 중간에 꺼버리고 무릎 꿇고 사과를 하는 장면이었다. 내가 팬심어린 마음으로 수줍게 말을 걸었던 사람의 게임이 변태병맛 게임 취급을 받는 것에 일단 실소했다. 표현 수위도 그렇고 맥락 없이 보면 그렇게 보일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특히 젠더나 섹스를 이야기하는데 아주 많이 보수적인 한국의 분위기에 맞춰 채팅창에서 다 함께 야단법석을 떠는 바람에, 이거 게이 다룬 거 아니냐고 진심 정색한 사람들이 더 우스워 보이기도 했다. 로버트 양은 꾸준히 게이 섹스 게임을 만들어왔는데, 1960년대 미국의 공중화장실부터 데이팅 앱까지 다양한 소재와 감시/통제의 문제를 연결한다. 그에게 게이 섹스 게임은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마땅한) 자기표현의 자유를 (여전히) 획득하기 위한 실존의 문제이다.

    제이슨 로러가 또 한 번 야심을 부린 최근작도 게임방송에서는 이상한 유머코드를 가진 서바이벌 게임 정도로 보였다. 제이슨 로러는 독창적인 게임플레이를 탐구하는 작가를 생각할 때 나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다. 플래시 드라이브에 담긴 가상세계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다음 사람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나 사막 한가운데 묻어버린 보드게임, 캐릭터가 최대 한 시간 생존하는 멀티플레이어 게임까지, 그는 인간 개개인에게 주어진 시간성을 뛰어넘는 게임 세계를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세계를 만드는 방식은 꾸준히 게릴라적이다. 게임방송은 그의 작업세계에 대한 맥락 없이 기존의 장르 법칙이나 매커닉을 기준으로 플레이하면서 판단했다. 물론 맥락이란 건 플레이어 입장에선 굳이 알 필요 없는 것이긴 하지만 알면 또 재미있을 수 있는 그런 정보들일 거다.

    게임방송은 내가 사서 플레이할 것 같지 않은 게임들 – 귀신 나오는 공포게임(디텐션 *Detention*만 예외로, 장면 장면을 놓칠 수가 없어서 심장을 부여잡고 했다)이나 배틀로얄류의 카피캣 -을 보는 재미가 있다. 배틀그라운드와 같이 껍데기만 있는 세계(아무런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은, 아이템을 파밍하고 방어나 공격의 전술적 기능만 남은 공간)를 가진 게임은 직접 플레이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지만(장르에 부합한 세팅이지만 내 취향은 아님), 대신에 스트리머가 만들어내는 드라마를 보는 건 재밌다.

    최근엔 라이브 방송도 챙겨보게 되었는데, 며칠 전에 스트리머가 방송의 화면 끊김을 막기 위해 그래픽 세팅에서 그림자를 꺼버리고 서바이벌 게임을 플레이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 때 하룬 파로키의 시리어스 게임즈 *Serious Games IV: A Sun without Shadow*의 그림자 없는 세계가 떠올랐다. 게임방송에서는 한 명이 플레이하는 것을 만여 명이 동시에 보기 위해서, 파로키의 영상에서는 퇴역군인의 트라우마 치료에는 예산이 적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 생겨난 결과이다. 이 그림자 없는 세계들은 최대한 현실감 있게 몰입적인 세계를 구현한다는 원래 의도에서 벗어난다. 플레이어는 꼭 필요한 그래픽만 남긴 기능적인 세계 안에서 사건이나 감정을 환기하거나(트라우마 치료) 새롭게 만들어 넣는다(게임방송 상황극).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플레이어가 계속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전달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비어있는 세계를 채워 넣는 플레이어와 그것을 지켜보는 제삼자의 피드백이 함께 내용을 만들어간다. 혼자 게임을 세팅하고 플레이할 때와 다른 경험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게임방송이라는 형식이 미디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모든 미디어가 그래야 하듯 다양한 장르가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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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search on Multiple Perspectives in Video Games

    *Ongoing Research Project*

    2017 / Cologne

    **Playing with Multiple Camera Perspectives
    as Video Game Mechanics: Theoretical Analysis and Artistic Design**

    Using multiple camera perspectives has not received much attention for its role as gameplay mechanic or important storytelling element in video games. This research aims to build an artistic design for multiple camera perspectives as video game mechanics. How can we use multiple camera perspectives as core game mechanics? How do these mechanics form a new type of gameplay and storytelling experience for players? This research focuses on the camera behaviors and properties which change dynamically in response to the game play and become a core part of the game mechanism. It contains four parts: a conceptual framework, reference analysis, design principles, and prototype development.

    This research derives four distinct types of gameplay based on three methods and four functions of controlling multiple camera perspectives. After the analysis of the games reflecting each functions, the game prototype is proposed with the goal to serve as the new alternative game that features multiple camera perspective as its core game mechanic. The design process of the prototype, *Layers of Reality*, examines multiple camera perspectives in real-time 3D game space to develop alternative game mechanics for a single-player game. The prototype encourages the players to explore multiple layers of reality to achieve a deeper understanding of the game world.

    Research question:

    – How can we use controlling multiple camera perspective as a core game mechanic? How does it form a new type of gameplay and storytelling experience to the players?

    – Are there conventions on the usage of multiple camera perspective which can be derived from the existing reference games? How can we broaden these conventions and apply them to new game storytelling?

    The paper is organized as follows. Chapter 1 introduces the discourse on applying multiple camera perspectives to video games. Chapter 2 defines terminologies and reviews previous studies. Chapter 3 examines the conventions in existing games based on three methods and four functions of controlling camera perspective. Chapter 4 presents an alternative model to analyze the four types of reference games that reflect on each function and method. Chapter 5 describes the design and development of the game prototype that aims to suggest new game mechanics. Chapter 6 concludes the paper with a discussion of the research contributions and future work.

  • [비디오게임과 커뮤니티 ③] 게임과 사회 시스템

    [비디오게임과 커뮤니티 ③] 게임과 사회 시스템

    *12 December 2014 / Cologne*
    *published in 똑똑 talk talk 커뮤니티와 아트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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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w Clicker (2010)

    게임과 사회 시스템

    게임 플레이란 불필요한 장애물을 극복하려는 자발적 시도라고 버나드 슈츠(Bernard Suits)는 정의한바 있다. 게임 플레이는 그 불필요한 장애물을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극복하여 목표를 이루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소셜게임에서 흔히 사용되는 매커니즘을 풍자한 카우 클리커(Cow Clicker, 2010)가 보여주듯이, 플레이어는 결과를 얻기 위해 때로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노동도 불사하며 그 노동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길은 금전적 소비로 연결되곤 한다.

    특정한 소비의 형태를 만들어내기 위해 게임의 특성을 도입하는 게이미피케이션의 예와 같이, 많은 장르 게임의 구조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닮았다. 킬스크린(Kill Screen)의 제이민 워런은, 이케아 마케팅의 성공신화에서도 게임의 특성을 찾아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플에이어가 마치 경로를 컨트롤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게임디자이너의 의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효율적인 레벨디자인은 ‘조직화된 동선(organized walking)’를 통해 이케아 매장에 적용된다. 또한 직접 상품을 조립해서 완성하는 과정을 적절한 난이도로 만들어 대랑생산품이 줄 수 없는 가치를 소비자 스스로 부여하도록 하는 것은 ‘노력의 정당화(effort justification)’로 이야기된다. source link

    정치사회적 이슈를 게임으로 만들어 온 몰레인더스트리아(Molleindustria)의 파올로 페더치니는 결과지향적 성격을 가진 비디오 게임이 자본주의의 산업 생산구조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플레이어의 행위를 특징짓는 대부분의 동사들 – 해결하기, 치우기, 관리하기, 업그레이드하기, 모으기 등 –은 산업구조의 합리화를 미학적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결과로 가는 과정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도구적으로 이용되곤 한다. source link

    몰레인더스트리아는 스마트폰 제작과정에서 노동 착취 등의 문제를 다룬 폰 스토리(Phone Story, 2011)가 앱스토어에서 삭제 당한 바 있다. 또 다른 게임, 더 나은 쥐덫 만들기(To Build A Better Mousetrap, 2014)는 R&D, 생산라인, 실업자로 나뉘어진 세 개의 수직 구조를 보여준다. 파산이나 집단 반발을 막고 효율적으로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해서 플레이어들은 마우스로 쥐들을 이리저리 옮겨 놓아야 한다. 생산성이 떨어지고 치즈를 더 달라고 항의하는 쥐들은 재빨리 밑으로 던져버리고, 현재 일하는 쥐들보다 더 적은 양의 치즈에도 일할 용의가 있는 실업자 쥐나 자동화 생산으로 빈 자리를 대체한다. 이 게임에서 목표를 성취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루카스포프의 페이퍼스, 플리즈(Papers, Please, 2013)에서도 플레이어는 출입국 관리인으로서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입국 신청자들 앞에서 선택의 순간에 직면해야 한다. 하지만 그 선택은 점점 까다로워지는 업무와 아슬아슬하게 연장되는 생활에 치여 어느 순간 가장 나은 결과를 위한 합리적인 계산만을 추동한다. 그 결과로 실직이나 사형을 피해 성공적으로 현상 유지를 했다면, 이것은 해피엔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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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 Build A Better Mousetrap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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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pers, Please (2013)

    게임플레이에서의 저널리즘을 다룬 책, 뉴스게임(Newsgames, 2010)에서 정의한 저널리즘이란 시민들이 그들의 개인적 삶과 커뮤니티를 위한 선택을 할 수 있게끔 돕는 생산물을 만드는 실천이다. 결과를 향해 반복적인 행위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반성과 성찰을 지속할 수 있고, 현실과 관련된 이슈에 대해 플레이어 각자가 더 깊은 생각을 이어갈 수 있도록 게임의 미션을 고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매스미디어가 던져주는 우리 삶의 문제에 대해 답변을 하는 것이 아니라, 틀을 벗어나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는 것은 능동적이고 비판적이며 창조적인 플레이어들로부터 성취된다.

    스탠리패러블(The Stanley Parable, 2013)에서는 익명의 나레이터가 등장한다. 그는 거대 기업의 직원 427번 스탠리가 아니라 스탠리를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에게 말을 건다. 두 개의 길 중에서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를 지시하고 그것을 “선택”하는 플레이어를 비꼬고 농락한다. 플레이어가 자신의 말을 계속해서 듣지 않으면 “어드벤쳐 라인”이라 불리는 노란 선을 바닥에 깔아놓고 그걸 따라오라며 조소하는 식이다. 플레이어는 결말을 보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의미 없이 버튼을 눌러야 할 수도 있다. 이 게임에서 나레이터는 게임 세계를 지배하는 체제(혹은 체제의 하수인)이고 스탠리는 빈껍데기이다. 플레이어는 이 체제를 넘어서서 스탠리가 되지 않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를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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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Stanley Parable (2013)

    더 나잇 저니(The Night Journey, 2010)라는 사색적인 비디오 게임에 참여하기도 했던 미디어아티스트 빌비올라는 비디오 아티스트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촬영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즉 스크린에서 숨겨진 부분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전체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게임에 적용해 본다면, 게임디자이너는 어떤 정보를 숨겨두거나 어떤 행위를 가능하게 하지 않음으로써, 플레이어가 스스로 상황을 비판적으로 생각해보고 해결책을 찾아보도록 여지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프로토타입 단계에 있는 게임 아츄(Achoo!, 2014)에서 플레이어는 레이저빔으로 도둑들을 막으며 중앙부를 사수하는 로봇을 조종한다. 레이저는 일정한 순간에 발사된다. 플레이어는 레이저의 위치와 방향을 조종할 수 있지만, 발사되는 시기나 발사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든 일정 순간이 되면 터지는 레이저빔을 가지고 때로는 눈 앞의 무고한 사람들을 터뜨릴 수 밖에 없다.

    리틀인페르노(Little inferno, 2012)에서는 어느 회사로부터 작은 벽난로와 불장난을 할 수 있는 아이템을 선물 받으며 게임이 시작된다. 보너스를 얻기 위한 조합을 만드는 퍼즐과 불이 만들어내는 예기치 않은 효과들은 이 단순한 놀이를 중독적으로 만든다. 가끔 보이지 않는 바깥 세상의 기상 악화 소식과 플레이어 캐릭터처럼 고립된 채 벽난로 앞에 앉아있는 소녀로부터 편지가 날아든다. 이것은 단순한 불장난이 아니라 찬바람이 밀려들어오는 굴뚝 밑에서 태울 수 있는 모든 것을 태워 온기를 잃지 말아야 하는 생존임이 분명해진다. 세상의 소식을 태우며 지속되는 놀이를 끝내고 밖으로 나가 현실을 직면하지 않는 한, 그 생존은 영원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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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o!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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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ttle inferno (2012)

    사회 시스템을 시뮬레이션하거나 알레고리화 하는 게임을 만드는 것에서 나아가, 인디 게임디자이너들은 현실의 게임산업 시스템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인 게임 개발과정을 고민한다. 라프코스터는 혁신적인 게임 개발을 위해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다. 먼저 모두가 코드를 새로 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코드와 라이브러리를 공유하는 것이다. 그는 FPS 장르의 게임들에서 95%의 코드가 겹쳐짐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FPS의 개발에 거대한 프로그래밍팀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다음으로, 하나의 게임을 완성하여 출시하는 것이 아니라 개발 단계에 플레이어를 포함하는 절차적인 과정을 통해 게임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기본적 틀(게임의 핵심 매커니즘)을 공개해서 사람들과 함께 콘텐츠를 채우는 것이, 완결된 틀에 콘텐츠를 채워서 공개하는 것보다 쉬운 길은 아니다. 일단 그토록 매력적인 틀을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더블파인(Double Fine) 프로덕션에서는 내부개발자들이 프로토타입을 제안하고 공개 투표를 통해 개발할 게임을 선정하는 암네시아 포트나이트(Amnesia Fortnight)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여기서 채택된 게임인핵앤슬래쉬(Hack ‘n’ Slash, 2014)는 캐릭터가 손에 든 USB 칼 등의 아이템으로 게임의 소스코드를 해킹해서 설정을 변경할 수 있다. 영원히 죽지 않는 캐릭터를 만들거나 적의 공격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고 장애물을 이동 가능하게 만들어서 맵을 바꿀 수도 있다. 실제 게임의 소스코드가 변경되는 것이기 때문에 게임 세계가 플레이 불가능 상태로 망가질 수도 있지만 이전 상태로 되돌려 복구가 가능하다. 플레이어들은 소스코드로의 접근을 통해 자신만의 버전을 만들 수 있고 그것은 다시 전체 게임 개발에도 영향을 준다.

    게임의 소스코드나 개발 과정을 공개하는 경우는 인디게임계에서 점점 더 활발해지고 있다. 노점상을 다룬 스토리로 호평받은 카트 라이프(Cart Life, 2011)는 전체 소스코드를 공개하며 스팀(Steam)에서의 판매를 중지했고, 뛰어난 퍼즐 디자인을 보여준 게임 잉글리시 컨트리 튠(English Country Tune, 2011)의 게임디자이너는 퍼즐스크립트(PuzzleScript)라는 오픈 소스 퍼즐게임 엔진을 공유했다. 카타클리즘(Cataclysm, 2013)의 개발자는 크라우드 펀딩을 추진하면서 이 게임은 무료로 제공될 것이고 오픈 소스로 커뮤니티를 통해 발전해 나갈 것이라 명시했지만, 킥스타터 모금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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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rt Life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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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rees(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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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lappy48

    독창적인 게임을 만들고자 하는 게임디자이너들에게 오픈소스는 게임 개발 과정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는 모험이기도 하다. 오픈된 소스가 표절한 것이냐 창조적으로 카피한 것이냐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올해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인디게임 중 하나인 Threes(2014)는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1024나 2048과 같은 카피 게임들을 마주했다. 특히 2048은 소스코드를 공개했고 사람들은 각자의 버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코딩을 교육하는 온라인 사이트에서는 이것을 교육용 소스로 이용하면서 코딩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사람들의 참여를 도왔다. Flappy48 같이 기존의 게임을 유머러스하게 패러디한 것들부터 고차원적인 수식이 들어가는 것까지, 한 때 2048의 변종을 만들고 공유하고 즐기는 것은 하나의 문화적 현상을 이루었다. 이에 대해 Threes의 개발자는 웹사이트에 1년 여의 지난했던 개발 과정을 공개하면서 씁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source link

    미디어로서의 비디오 게임은 아티스틱한 창작품일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실천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비디오 게임으로 우리는 우리가 사회를 보는 시선을 표현할 수 있다. 누군가 던진 질문에 능동적으로 답하는 것에서 나아가, 우리 모두가 각자의 질문을 제시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고, 나아가 비디오 게임이사회 시스템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대안을 찾는 진정한 미디어의 역할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작은 게임들의 창작과 공유가 활발해질수록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서 게임을 통해 이야기할 동료들을 쉽게 만나고 협력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영주 / 독일 쾰른에 거주중인 인디 게임 디자이너

  • [비디오게임과 아트커뮤니티②] 경계에 선 게임들과 새로운 커뮤니티

    [비디오게임과 아트커뮤니티②] 경계에 선 게임들과 새로운 커뮤니티

    *04 October 2014 / Cologne*
    *published in 똑똑 talk talk 커뮤니티와 아트 magazine*

    1-The_Artist_Is_Present
    The Artist Is Present(2011)

    경계에 선 게임들과 새로운 커뮤니티

    게임 디자이너 피핀 바(Pippin Barr)의 아티스트 이즈 프레즌트(The Artist Is Present, 2011)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있었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의 퍼포먼스를 디지털 공간에 재현한 것이다. 뉴욕 시간대의 미술관 관람시간에 맞춰 플레이어는 디지털 버전의 모마로 들어설 수 있다. 전시장 안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앞쪽으로 걸어가보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예술가와 관객 한 명이 의자에 앉아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플레이어도 줄을 서 보지만 줄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게임을 만든 피핀 바 자신도 5시간을 기다려서야 아브라모비치의 앞에 앉을 수 있었다.
    미술관에 길고 긴 줄을 선 사람들을 보고 농담으로 만들었던 이 게임을 보고 아브라모비치가 협업을 제안해왔고 이후 피핀 바는 그녀의 메소드를 담은 게임들을 공개하고 있다. 그의 또 다른 게임인 아트 게임(Art Game, 2013)에서는 예술 작업과 그것의 평가에 대한 과정이 유머러스하게 전개된다. 특히 조각이나 비디오아트를 만드는 과정을 테트리스나 아스테로이드와 같은 고전 게임의 매커니즘으로 치환시킨 것이 흥미롭다.

    2-The_Digital_Marina_Abramovic_Institute
    The Digital Marina Abramovic Institute (2013)

    3-Art_Game
    Art Game (2013)

    아트 게임(art game)이라고 분류되는 게임들이 있다. 예술계와의 협업을 통해 만든 게임이 디자이너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분류되는 경우도 있고, 게임 디자이너가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 넷아트에서 출발한 두 명의 게임 디자이너로 구성된 테일오브테일즈(Tale of Tales)는 리얼타임 아트 메니페스토(Realtime Art Manifesto, 2006)를 통해, 게임 테크놀로지를 새로운 예술적 표현을 위해 사용하고 게임디자이너 스스로 작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게임 산업계에서 살아남으려는 비즈니스 모델 같은 건 애초에 생각하지 못했다. 10여 년 간 꾸준히 자신들의 방식으로 게임을 만들었고 이제는 다음 게임을 개발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만큼의 팬 층을 확보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인디 게임(Indie Game: The Movie, 2012)에나 나올법한 인디 개발자들의 드라마틱한 성공은 여전히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다. 현재 개발 중인 선셋(Sunset, 2014)은 킥스타터를 통해 펀딩을 받았다.

    4-THE_ENDLESS_FOREST
    The Endless Forest (2006)

    5-bientotlete
    Bientot l’ete (2012)

    아트 게임이라는 명칭에 모두가 동의하고 있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그렇게 분류되는 게임을 만드는 디자이너들은 무엇보다도 게임을 개인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여긴다. 그래서 퍼스널 게임(personal game)이라는 용어가 함께 언급되곤 한다.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을 창작할 수 있는 오픈소스 툴인 트와인(Twine) 등 누구나 쉽게 자신의 이야기를 게임으로 만들 수 있는 도구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렇게 쏟아져 나오고 있는 퍼스널 게임들은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다양한 논의를 이끌어내고 있다.
    뉴욕 모마에 소장되어있으며 아트 게임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게임 중 하나인 패시지(Passage, 2007)의 디자이너 제이슨 로러(Jason Rohrer)는 자신의 게임을 퍼스널 아트(personal art)라고 표현하며 메인 캐릭터는 자신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그는 더 캐슬 독트린(The Castle Doctrine, 2014)이라는 게임으로 논란의 한 복판에 선 적이 있다.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고 선 미국·백인·헤테로 가정의 남성·가장을 플레이하는 이 게임은 제이슨 로러가 총기소지를 옹호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논란이 더해졌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떤 배경에서 이 게임이 나오게 되었는가를 밝혔고, 그것에 대한 온라인 토론은 게임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 뜨거웠다. 퍼스널 게임은 게임 디자이너가 게임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게임의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7-The_Castle_Doctrine-1
    ​The Castle Doctrine (2014)

    대규모 개발비가 투자되는 AAA게임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게임연구자 미아 콘살보와 나단 듀튼은 그랜드 세프트 오토 (Grand Theft Auto 3, 2001)의 예를 들어서 게임 플레이의 윤리적인 부분에 대해 게임 디자이너가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는 구성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Game analysis: Developing a methodological toolkit for the qualitative study of games, 2006).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 캐릭터는 매춘부와의 섹스로 생명력을 채우고, 그 후에 그녀를 폭행함으로써 지불했던 돈을 되찾을 수 있다. 이것은 ‘매춘부를 통해 생명력을 채울 수 있다’와 ‘다른 캐릭터를 두들겨 패서 돈을 얻을 수 있다’라는 독립적인 두 행위의 조합이며, 그러한 창발적 게임플레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플레이어의 자유이다. 게임 디자이너는 시스템 안에서 가능한 상황들을 만들어놓고 그것에 대한 윤리적 책임은 피해갈 수 있는 것이다.

    퍼스널 게임이나 아트 게임은 게임을 만드는 사람뿐만 아니라 게임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이끌어내고 있다. 기존의 게임문화를 향유해온 사람들 중에서는 아트 게임이나 퍼스널 게임은 진정한 게임이 아니며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게이머”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게임이라는 미디어를 협소하게 만드는 기존의 “게이머” 문화에 반기를 드는 쪽에서는 “게이머(gamer)”라는 명칭에 대해서 회의를 표시한다. 게임스 포 체인지 유럽(Games for Change Europe)의 디렉터인 카타리나 틸먼은 나는 게임 하는 것을 좋아하고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지만, 누군가 너는 “게이머”이냐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불편하다고 말한다. 게임 디벨로퍼 매거진의 편집장 브랜든 셰필드(Brandon Sheffield) 역시 게이머라는 호칭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며 더 이상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Let’s retire the word ‘gamer’, 2013).

    최근 트위터 해시태그인 게이머게이트(#gamergate)를 통해 게임문화에서의 성차별에 대해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다. 이것은 어느 여성 인디게임 디자이너가 자신의 게임에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게임 매거진의 에디터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거짓 폭로로 시작되었다. 그것을 필두로 소위 게임 같지도 않은 게임들에 가치를 부여하는 현재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게이머”들의 너저분한 비방이 이어졌다. 이에 가마수트라(Gamasutra)의 에디터 리 알렉산더(Leigh Alexander)는 전통적인 게이밍과 게이머는 죽었고, 이제 우리는 게이머를 위해 게임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아티클을 썼다. 그녀는 “게이머”들이 화가 난 이유는 그들의 시대가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Gamers’ don’t have to be your audience. ‘Gamers’ are over, 2014).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게임 문화가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앞으로 더 다양한 게임들과 더 다양한 플레이어들을 가지게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기존의 게임 장르에 속하지 않고 경계에 선 게임들은 게임이라는 미디어를 다른 방향에서 사유하도록 하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아트 게임이나 퍼스널 게임은 “게이머”처럼 차차 없어질 용어가 될 것이지만, 당분간은 이 새로운 움직임을 위해 여러 맥락에서 다양한 의도를 가지고 사용될 것이다.

    김영주 / 독일 쾰른에 거주중인 인디 게임 디자이너

  • [비디오게임과 아트커뮤니티①] 미술관의 비디오게임

    [비디오게임과 아트커뮤니티①] 미술관의 비디오게임 (독일)

    *07 August 2014 / Cologne*
    *published in 똑똑 talk talk 커뮤니티와 아트 magazine*

    Continue
    Continue?9876543210(2013)

    미술관의 비디오게임 (독일)

    비디오게임과 현대예술에 대한 글을 쓰면서 비디오게임은 예술인가 아닌가를 화두로 꺼내고 싶지는 않다. 그것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런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라는 대답 이상이 나올 수도 없는 질문인 것 같다. 하지만 게임을 미술관에서 아카이빙하거나 전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다. 게임디자이너로서 내가 만든 작은 게임들이 사람들과 접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하나 더 생긴다는 점에서 말이다. 소위 “아트게임”류로 불리는 비디오게임의 장르 중에서는 미디어아트와 비슷한 방식으로 향유되는 게임들이 있고, 게임엔진이나 기존의 비디오게임이 미디어아티스트에 의해 변용되어 다른 의도를 지니게 된 작품들도 있다. 즉 어떤 것이 어디서 어떻게 보여지고 소비되느냐의 맥락에 따라 비디오게임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미술관에서의 비디오게임 아카이빙 및 전시는 미술사 안에서 비디오게임을 어떻게 놓을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출발한다. 게임문화를 다룬 현대미술 작품이나 예술장르로서의 비디오게임 등 대상은 다양하다. 코라도 모르가나는 아트게임(Artgame)과 게임 아트(Game Art)를 구분하는데, 아트게임(Artgame)은 플레이 매커니즘이나 서사 전략, 시각적 언어에서 예술성을 보여주는 게임이며, 게임 아트(Game Art)는 게임 속성이나 언어를 사용/남용/오용한 예술작품이다 (, 2010). 하지만 이 두 용어는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고 비디오게임에 대한 전시라는 이름 아래 뒤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

    2012년부터 시작된 뉴욕 MoMA의 게임 아카이빙은 어떠한 게임을 어떤 형식으로 미술관에 가져다 놓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에 불을 지폈다. 독일의 경우, ZKM에서 90년대 후반부터 비디오게임을 전시에 포함시켰고, 2013년에는 “비디오게임과 실험적 형태의 플레이”라는 주제로 ZKM_Gameplay라는 상설전시를 만들었다. 큐레이터인 슈테판 슈빈겔러는 게임이란 오디오비주얼을 다루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며 컨트롤 가능한 이미지라고 정의했는데, 그 정의만큼이나 전방위적으로 게임을 선정하는 듯하다. 팩맨이나 퐁과 같은 클래식 게임과 오래된 게임기들이 한쪽 구석에 수줍게 자리하고 있고, 게임을 변용한 Jodi의 플레이할 수 없는 게임 작품들, 현대미술과 미술관에 대해 직접적인 비판을 가하는 Arsdoom(1995)과 같은 게임도 있다. Fez(2012)나 Journey(2012)와 같이 잘 알려진 인디게임도 다수 포함되어 있고, 물리적 인터페이스를 결합한 Susigames(2003-12)이나 Room Racers(2010)같은 게임 앞에는 아이들이 많이 모여있다.

    ![alt](/content/images/2016/03/SOD.png)
    SOD (1999)

    ![alt](/content/images/2016/03/Arsdoom.png)
    Arsdoom(1995)

    Journey
    Journey(2012)

    ![alt](/content/images/2016/03/Room_Racers.png)
    Room Racers(2010)

    여타의 비디오게임과는 다르다고 강조하는 새로운 게임 장르는 게임 커뮤니티 안에서도 활발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쾰른의 낫게임즈(Notgames) 페스티벌, 베를린의 어메이즈(A MAZE) 페스티벌이 대표적인 예이다. ZKM은 어메이즈 페스티벌과 연계해서 수상작들을 전시 공간으로 가져오기도 했다. 전시 공간에서 게임을 하는 재미만으로 볼 때야 미술관보다는 인디게임 페스티벌의 경우가 훨씬 낫다. 백여 개의 새로운 게임들 사이에서 맥주병을 들고 잔뜩 흥분한 게이머들과 부대끼며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술관에서 게임을 접할 때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건 뭘까? 책은 도서관에서, 영화는 영상자료원에서 소장하는 것처럼 게임은 게임박물관에서 소장해야 할까? 베를린의 게임박물관(Computerspielemuseum)에서는 각종 게임기들과 함께 게임의 역사에서 특기할만한 게임들을 전시하고 있다. 오락적 미디어로서의 게임에 중점을 두고, 독일의 오래된 인터랙티브 텔레비전 프로그램(Telespiele 등)도 함께 소개한다. 게임의 역사를 다룬 책에서 그림으로 봤던 게임들을 직접 해보는 재미도 있다. 기존의 게임을 변용한 아트게임인 ROM Check Fail(2008)이나 게임의 패자를 물리적으로 응징하는데 악명 높은 Painstation(2001) 같은 작품들은 유원지처럼 꾸며놓은 아케이드 룸 바로 옆에서 전시되고 있다. 규모나 전시 형식에 조금 차이가 있을 뿐 미술관의 게임 아카이빙이나 상설전시가 다루고 있는 게임들이 게임박물관과 상당 부분 겹친다.

    Painstation
    Painstation(2001)

    A_MAZE_
    A MAZE 2014

    다양한 게임을 경험해볼 수 있는 전시들도 있지만, 게임을 멈추고 게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전시도 있다. 특히 미디어로서의 게임에 대해 성찰하는 전시에 비디오게임이 없을 수도 있다. 얼마 전 작고한 하룬 파로키(Harun Farocki)의 시리어스 게임즈(Serious Games, 2009-2010)는 게임미디어에 대해 다룬 비디오 인스톨레이션 연작으로, 베를린의 함부르거 반호프 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다. Serious Games I: Watson is Down은 전쟁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는 군인들을 보여준다.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 환경을 보면서 실제처럼 무전을 치고 작전을 수행하던 군인들 앞에 왓슨의 아바타가 죽어 넘어지고 그들은 덤덤하게 왓슨이 죽었다고 교신한다. Serious Games II: Three Dead 는 게임 환경을 실제 환경에 재매개한 듯이 세워진 야외 세트와 NPC 역할을 하고 있는 배우들로 구현된 훈련 상황을 보여준다. 총격이 일어나고 테이블에서 밥을 먹던 사람들은 도망친다. 카메라는 사건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떠나버린 빈 테이블을 한 동안 비춘다. 행위자가 모두 떠난 텅 빈 자리는 게임 안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Serious Games III: Immersion은 가상 환경으로 전후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한 군인은 기억 속의 상황과 비슷하게 재현된 게임 환경을 보고 ‘맞아요, 그 때의 풍경도 이렇게 초현실적이었어요’라고 말한다. Serious Games IV: A Sun with No Shadow는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과 트라우마 치료를 위한 시뮬레이션 화면을 비교하며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치료를 위한 가상환경은 상대적으로 낮은 예산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정교한 인공 태양이 사용되지 않고 그림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바타들은 유령처럼 3D 환경을 떠다닌다.

    전쟁과 미디어 발전의 관계에 대한 키틀러식의 해석으로 파로키의 작품을 감상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비디오게임에 대한 미디어 비평으로 읽혔다. 게임이 보여줄 수 있는 장면과 보여줄 수 없는 장면의 대비를 통해 게임이 어떤 경험을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주기도 했다. 특히 Serious Games III: Immersion에서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를 쓴 군인의 시선을 보여주는 첫 번째 스크린은 실제처럼 구현된 가상 환경 안에서 주로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터, 하늘이나 땅의 한 조각에 머물고 있었다. 구토할 것 같다며 그가 머리를 감싸 쥐었을 때 작가는 첫 번째 스크린을 암전시킨다. 가상의 이미지는 이미 기억이 만들어낸 심적인 이미지에 의해 먹혀버렸기 때문이다. 이 이미지들은 기억을 환기시키려는 용도로 사용될 뿐 그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Serious_Games_I-1
    Serious Games I

    Serious_Games_III-1-1
    Serious Games III

    Serious_Games_III-2
    Serious Games III
    Serious_Games_IV (1)
    Serious Games IV

    실재하지 않는 것이 불러일으키는 실재하는 것에 대한 기억을 다룬 파로키의 작품은 그와 다른 접근을 보여주는 인디게임 Continue?9876543210을 떠올리게 한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 캐릭터가 게임 퀘스트에 실패한 후 게임이 종료된 지점에서 시작되는 게임이다. 플레이어 캐릭터는 곧 사라질 메모리 캐시에서 떠도는 전우들을 만난다. 하지만 그들은 무대 뒤의 광대처럼 지쳐있다. 퀘스트를 실패해서 너무나 많은 이들을 죽인 것을 자책하며 용서를 구하는 플레이어 캐릭터에게 동료들은 게임에서의 기억을 모두 잊고 사라져가길 권한다. 그래서 다시 게임이 시작될 때 그들은 기억 없는 존재로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어디 있지? 글쎄, 코드의 라인 위에 있는 거겠지. 랜덤 액세스 메모리를 목적 없이 방황하면서,” 라는 캐릭터들의 대사는 Continue?9876543210가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임임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기억은 하룬 파로키의 작품이 이야기하는 기억과는 달리 실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기억이며, 그 기억 자체도 실재하지 않는 것이다.

    게임에 대한 전시라는 것은 회화에 대한 전시, 디지털아트에 대한 전시라는 말처럼 곧 무의미해질 것이다. 매해 영리한 게임 디자이너들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다양한 비디오게임을 미술관에서 맥락 없이 소비하는데 급급한 것이 아니라 게임 미디어에 대한 심도 깊은 비평을 담은 전시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그러한 전시를 경험하면서 게임 바깥에서 게임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새로운 게임으로 담아내는 것은 나의 개인적인 바람이기도 하다.

    김영주 / 독일 쾰른에 거주중인 인디 게임 디자이너

    [비디오게임과 아트커뮤니티①] 미술관의 비디오게임 (독일)

    *07 August 2014 / Cologne*
    *published in 똑똑 talk talk 커뮤니티와 아트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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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inue?9876543210(2013)

    미술관의 비디오게임 (독일)

    비디오게임과 현대예술에 대한 글을 쓰면서 비디오게임은 예술인가 아닌가를 화두로 꺼내고 싶지는 않다. 그것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런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라는 대답 이상이 나올 수도 없는 질문인 것 같다. 하지만 게임을 미술관에서 아카이빙하거나 전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다. 게임디자이너로서 내가 만든 작은 게임들이 사람들과 접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하나 더 생긴다는 점에서 말이다. 소위 “아트게임”류로 불리는 비디오게임의 장르 중에서는 미디어아트와 비슷한 방식으로 향유되는 게임들이 있고, 게임엔진이나 기존의 비디오게임이 미디어아티스트에 의해 변용되어 다른 의도를 지니게 된 작품들도 있다. 즉 어떤 것이 어디서 어떻게 보여지고 소비되느냐의 맥락에 따라 비디오게임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미술관에서의 비디오게임 아카이빙 및 전시는 미술사 안에서 비디오게임을 어떻게 놓을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출발한다. 게임문화를 다룬 현대미술 작품이나 예술장르로서의 비디오게임 등 대상은 다양하다. 코라도 모르가나는 아트게임(Artgame)과 게임 아트(Game Art)를 구분하는데, 아트게임(Artgame)은 플레이 매커니즘이나 서사 전략, 시각적 언어에서 예술성을 보여주는 게임이며, 게임 아트(Game Art)는 게임 속성이나 언어를 사용/남용/오용한 예술작품이다 (, 2010). 하지만 이 두 용어는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고 비디오게임에 대한 전시라는 이름 아래 뒤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

    2012년부터 시작된 뉴욕 MoMA의 게임 아카이빙은 어떠한 게임을 어떤 형식으로 미술관에 가져다 놓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에 불을 지폈다. 독일의 경우, ZKM에서 90년대 후반부터 비디오게임을 전시에 포함시켰고, 2013년에는 “비디오게임과 실험적 형태의 플레이”라는 주제로 ZKM_Gameplay라는 상설전시를 만들었다. 큐레이터인 슈테판 슈빈겔러는 게임이란 오디오비주얼을 다루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며 컨트롤 가능한 이미지라고 정의했는데, 그 정의만큼이나 전방위적으로 게임을 선정하는 듯하다. 팩맨이나 퐁과 같은 클래식 게임과 오래된 게임기들이 한쪽 구석에 수줍게 자리하고 있고, 게임을 변용한 Jodi의 플레이할 수 없는 게임 작품들, 현대미술과 미술관에 대해 직접적인 비판을 가하는 Arsdoom(1995)과 같은 게임도 있다. Fez(2012)나 Journey(2012)와 같이 잘 알려진 인디게임도 다수 포함되어 있고, 물리적 인터페이스를 결합한 Susigames(2003-12)이나 Room Racers(2010)같은 게임 앞에는 아이들이 많이 모여있다.

    ![alt](/content/images/2016/03/SOD.png)
    SOD (1999)

    ![alt](/content/images/2016/03/Arsdoom.png)
    Arsdoom(1995)

    Journey
    Journey(2012)

    ![alt](/content/images/2016/03/Room_Racers.png)
    Room Racers(2010)

    여타의 비디오게임과는 다르다고 강조하는 새로운 게임 장르는 게임 커뮤니티 안에서도 활발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쾰른의 낫게임즈(Notgames) 페스티벌, 베를린의 어메이즈(A MAZE) 페스티벌이 대표적인 예이다. ZKM은 어메이즈 페스티벌과 연계해서 수상작들을 전시 공간으로 가져오기도 했다. 전시 공간에서 게임을 하는 재미만으로 볼 때야 미술관보다는 인디게임 페스티벌의 경우가 훨씬 낫다. 백여 개의 새로운 게임들 사이에서 맥주병을 들고 잔뜩 흥분한 게이머들과 부대끼며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술관에서 게임을 접할 때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건 뭘까? 책은 도서관에서, 영화는 영상자료원에서 소장하는 것처럼 게임은 게임박물관에서 소장해야 할까? 베를린의 게임박물관(Computerspielemuseum)에서는 각종 게임기들과 함께 게임의 역사에서 특기할만한 게임들을 전시하고 있다. 오락적 미디어로서의 게임에 중점을 두고, 독일의 오래된 인터랙티브 텔레비전 프로그램(Telespiele 등)도 함께 소개한다. 게임의 역사를 다룬 책에서 그림으로 봤던 게임들을 직접 해보는 재미도 있다. 기존의 게임을 변용한 아트게임인 ROM Check Fail(2008)이나 게임의 패자를 물리적으로 응징하는데 악명 높은 Painstation(2001) 같은 작품들은 유원지처럼 꾸며놓은 아케이드 룸 바로 옆에서 전시되고 있다. 규모나 전시 형식에 조금 차이가 있을 뿐 미술관의 게임 아카이빙이나 상설전시가 다루고 있는 게임들이 게임박물관과 상당 부분 겹친다.

    Painstation
    Painstation(2001)

    A_MAZE_
    A MAZE 2014

    다양한 게임을 경험해볼 수 있는 전시들도 있지만, 게임을 멈추고 게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전시도 있다. 특히 미디어로서의 게임에 대해 성찰하는 전시에 비디오게임이 없을 수도 있다. 얼마 전 작고한 하룬 파로키(Harun Farocki)의 시리어스 게임즈(Serious Games, 2009-2010)는 게임미디어에 대해 다룬 비디오 인스톨레이션 연작으로, 베를린의 함부르거 반호프 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다. Serious Games I: Watson is Down은 전쟁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는 군인들을 보여준다.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 환경을 보면서 실제처럼 무전을 치고 작전을 수행하던 군인들 앞에 왓슨의 아바타가 죽어 넘어지고 그들은 덤덤하게 왓슨이 죽었다고 교신한다. Serious Games II: Three Dead 는 게임 환경을 실제 환경에 재매개한 듯이 세워진 야외 세트와 NPC 역할을 하고 있는 배우들로 구현된 훈련 상황을 보여준다. 총격이 일어나고 테이블에서 밥을 먹던 사람들은 도망친다. 카메라는 사건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떠나버린 빈 테이블을 한 동안 비춘다. 행위자가 모두 떠난 텅 빈 자리는 게임 안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Serious Games III: Immersion은 가상 환경으로 전후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한 군인은 기억 속의 상황과 비슷하게 재현된 게임 환경을 보고 ‘맞아요, 그 때의 풍경도 이렇게 초현실적이었어요’라고 말한다. Serious Games IV: A Sun with No Shadow는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과 트라우마 치료를 위한 시뮬레이션 화면을 비교하며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치료를 위한 가상환경은 상대적으로 낮은 예산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정교한 인공 태양이 사용되지 않고 그림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바타들은 유령처럼 3D 환경을 떠다닌다.

    전쟁과 미디어 발전의 관계에 대한 키틀러식의 해석으로 파로키의 작품을 감상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비디오게임에 대한 미디어 비평으로 읽혔다. 게임이 보여줄 수 있는 장면과 보여줄 수 없는 장면의 대비를 통해 게임이 어떤 경험을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주기도 했다. 특히 Serious Games III: Immersion에서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를 쓴 군인의 시선을 보여주는 첫 번째 스크린은 실제처럼 구현된 가상 환경 안에서 주로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터, 하늘이나 땅의 한 조각에 머물고 있었다. 구토할 것 같다며 그가 머리를 감싸 쥐었을 때 작가는 첫 번째 스크린을 암전시킨다. 가상의 이미지는 이미 기억이 만들어낸 심적인 이미지에 의해 먹혀버렸기 때문이다. 이 이미지들은 기억을 환기시키려는 용도로 사용될 뿐 그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Serious_Games_I-1
    Serious Games I

    Serious_Games_III-1-1
    Serious Games III

    Serious_Games_III-2
    Serious Games III
    Serious_Games_IV (1)
    Serious Games IV

    실재하지 않는 것이 불러일으키는 실재하는 것에 대한 기억을 다룬 파로키의 작품은 그와 다른 접근을 보여주는 인디게임 Continue?9876543210을 떠올리게 한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 캐릭터가 게임 퀘스트에 실패한 후 게임이 종료된 지점에서 시작되는 게임이다. 플레이어 캐릭터는 곧 사라질 메모리 캐시에서 떠도는 전우들을 만난다. 하지만 그들은 무대 뒤의 광대처럼 지쳐있다. 퀘스트를 실패해서 너무나 많은 이들을 죽인 것을 자책하며 용서를 구하는 플레이어 캐릭터에게 동료들은 게임에서의 기억을 모두 잊고 사라져가길 권한다. 그래서 다시 게임이 시작될 때 그들은 기억 없는 존재로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어디 있지? 글쎄, 코드의 라인 위에 있는 거겠지. 랜덤 액세스 메모리를 목적 없이 방황하면서,” 라는 캐릭터들의 대사는 Continue?9876543210가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임임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기억은 하룬 파로키의 작품이 이야기하는 기억과는 달리 실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기억이며, 그 기억 자체도 실재하지 않는 것이다.

    게임에 대한 전시라는 것은 회화에 대한 전시, 디지털아트에 대한 전시라는 말처럼 곧 무의미해질 것이다. 매해 영리한 게임 디자이너들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다양한 비디오게임을 미술관에서 맥락 없이 소비하는데 급급한 것이 아니라 게임 미디어에 대한 심도 깊은 비평을 담은 전시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그러한 전시를 경험하면서 게임 바깥에서 게임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새로운 게임으로 담아내는 것은 나의 개인적인 바람이기도 하다.

    김영주 / 독일 쾰른에 거주중인 인디 게임 디자이너

  • 아주 단순한 세계에 대한 판타지

    *07 August 2013 / Seoul*
    아주 단순한 판타지가 주는 위로

    나에게 Journey는 게임이 끝난 직후에 받은 한 차례의 감동으로만 남아있는데, 아버지의 마지막 몇 주를 Journey를 함께 하며 보냈다는 15살 소녀는 이해가 된다. 마주보고는 어떤 말도 나누기 벅찰 때 웃으며 할 수 있었을 아빠와의 마지막 교감이었을 거다.
    (source link)

    말 없는 세계. 서로에 대해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은 세계. 오해할 것도 변명할 것도 서로 더 말할 것도 없는 세계. 같이 갈 수도 같이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모두 같은 길을 가고있음이 분명한 세계.
    아주 단순한 세계에 대한 판타지

    consolation from the simple fantasy

  • 게임디자인 워크숍에 대한 메모

    *09 August 2013 / Seoul*

    -하라, -하지말라, 라는 메시지 전달 방식이나 자극적이고 감정적인 형태의 홍보를 너무 많이 보게 돼서 피로하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문제들이나 마음에 걸리는 사회 이슈에 대해 결론을 내리기 전에 다른 이들의 의견들을 참 많이 보고 듣게 된다. 그래서인지 타인이 만든 스토리텔링을 경험하는 것보다, 내가 직접 누군가 참여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만드는 과정’에 더 관심이 생긴다. 특정한 문제로부터 시작되는 다양한 선택지나 상황을 만들어보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성향이나 혹은 정치성 같은 것들도 생각해볼 수 있다.

    다수의 인디게임 개발자들이 게임을 만드는 것 만큼이나 게임이나 인터랙티브 픽션을 만들 수 있는 툴을 개발하고 공유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예를들어, Twine은 새로울 것 없는 형식을 가진 텍스트 기반의 인터랙티브 픽션 툴이지만 지금은 그것을 누구든 여러 방식으로 실험할 수 있다는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Twine 으로 다이어리, 연애편지, 자기소개서 등을 쓰거나 블로깅, 아카이빙, 하고자 하는 어떤 일에 대한 브레인스토밍 등을 해볼 수 있다. 어떤 문제를 제기해서 동의를 구하는데 쓰거나 다양한 의견들과 부딪혀 보기 위해 사용할 수 있다. 혹은 또 다른 무엇이 될 수도 있겠다. (어떤 새로운 형태가 나올 수 있을지, 많은 사람들과 즐겁게 Twine 워크숍 한 번 해보고싶다)

    현재 이와 같은 툴들로 만들어진 작은 작품들은 개인적인 표현에 집중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참여적인 작품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참여자들은 제작자가 재미없는 자기 주장만 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인터랙티브하게 만들어보는 과정, 그것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참여 퍼포먼스 Domini Públic 를 만든 Roger Bernat 는 개개인이 일상의 사소한 문제들에 대해 답변을 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나아가 사회적 목소리가 형성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여러 도시에서 실행된 그 퍼포먼스를 통해 가장 많이 배웠을 사람은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써 행위했던 관객보다 질문을 던지며 전체적인 그림을 보고 있던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우리 삶의 문제에 대해, 매스미디어나 타인이 던지는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답변을 해야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될 수 있다. 나는 내가 내린 답변으로 타인을 판단하곤 하지만, 내가 만들어내는 질문을 통해서 타인을 보고 싶고, 그렇게 마주한 타인과의 관계는 어떠할지 궁금하다.
    사실 내가 던진 질문에 답변을 할 사람이 나뿐일 수도 있다. 개인적인 표현에 기반한 인터랙티브 픽션이나 게임에서 인터랙티비티는 무엇을 의미할까? 잠재적인 참여자들에 대해 생각하고 구현하는 과정에서 나아가 결과물에 대한 판단은? 이건 다음에… 정리해야지…;;;

  • 퍼스널 게임 Personal Games

    *26 July 2013 / Seoul*

    게임메이킹 워크숍 구상하면서 지역 커뮤니티와 연관된 게임 아이디어를 생각하다가, 몇 년 전 Jason Rohrer 의 GDC 발표를 떠올렸다. 종교로서의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는 자리였는데, 소도시의 시장이었던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유산들에서 착안을 얻어서 Chain World 를 발표했다. Chain World 는 USB에 담긴 마인크래프트 맵으로, 한 번에 한 사람씩 전달받아 할 수 있는 게임인데 각각의 플레이어가 신처럼 다음 플레이어를 위한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알려져있지 않다;; 갖은 우여곡절 끝에 USB도 지금은 행방이 묘연함) 여기서 재미를 들렸는지 올해 공개한 A Game for Someone 은 미래의 누군가를 위한 게임이라며 만들어 놓고는 네바다 사막 한가운데 본인이 직접 묻어놨다. GDC 발표장에 있던 사람들에게 1,017,000개의 GPS가 담긴 종이를 나눠줬는데 하루에 한 장소씩 뒤져도 2,786년이 걸리기 때문에 미래를 위한 게임으로 오랫동안 묻혀있을 수 있을 거란다. 이 게임을 발표할 때도 짓는데 3백년 걸린 대성당의 이미지를 제시하면서, 살아있는 동안은 절대 완성된 모습을 볼 수 없지만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으로 의미를 두는 작업에 대한 컨셉을 이야기했다.

    Jason Rohrer는 그가 만든 인디게임들이 메타 게임이나 게임 문화에 대한 이슈를 불러일으킨다는데 의미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게임 The Castle Doctrine에 대한 RPS 인터뷰에서 Jason Rohrer는 자신의 게임은 “personal art”라는 표현을 썼고, 메인 캐릭터는 자신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그 맥락에서 봤을 때는 질문의 요지에 다소 어긋난 세련되지 못한 답변이었지만. 논란이 생기자 그것에 대한 자신의 입장도 정리해 놓았다(지만 그걸로 더 까임;)

    “Personal game”이라는 용어는 젠더, 인종 등의 문제를 다룬 소수자들의 게임과 관련해서 주로 사용된다. 하지만 미국 헤테로 백인 가정의 남성 가장이 만든 게임은 또다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뭐 정치적 입장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 총기 소지를 합법화해야한다는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나아가 그것을 옹호하는 게임을 만들었다고 해도 할 수 없다고 본다. 개인적으론 게임 플레이 자체만 놓고 봐도 썩 유쾌하진 않았다. 이웃 마을을 약탈하고 자신의 마을을 방어하는 비슷한 매커니즘을 가진 SNS 기반의 게임들은 별 생각없이 했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이 게임 플레이와 작가의 스테이트먼트와 논란이 전개되는 양상들이 더욱 흥미롭다. 게임을 하면서 게임 디자이너들의 정치적 성향이나 철학을 읽을 수 없거나, 혹은 그것이 게임에 묻어있는 채로 몰입적 게임플레이를 타고 은근슬쩍 넘어가는 이런 지점들이 인디게임들을 통해 밖으로 논의될 수 있는 것 같다. 별 이유없이 총질하는 게임과 총기소지를 옹호하는 게임 디자이너가 만든 총질하는 게임은 각각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학기 중에,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 경험하는 것에 대한 게임 아이디어를 내보는 과제를 낸 적이 있다. 그 때도 몇몇 아이디어들을 보고 충격에 빠졌었다. (군대 문화나 북한에 대한 시각이라든가..) 별 얘기 하지않으려다가, 당신과 다른 정치적 입장은 이런게 있다는 첨언으로 가볍게 넘어갔었다.

    게임이라는 미디어의 다양한 측면과 함께 “art game”이나 “personal game”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Jason Rohrer는 참 흥미로운 사람이다. 더 많은 논란들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런데 사실 재밌는 건, 내게 가장 인상깊게 남은 그의 게임(아이디어)들은 ‘(거의) 아무도 플레이하지 못한 게임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종류 게임에 있어서 더 중요한 문제는 그 게임을 (거의) 하지 않고 사람들이 비판을 한다는 점인 것 같다. The Castle Doctrine 도 재미가 없어서 오래 못함..ㅠ 무엇보다 게임플레이가 더 재밌고 흥미로워야 한다.

  • 세 개의 비디오게임과 텍스트 사용

    세 개의 비디오 게임과 텍스트
    Text in Videogames: To the moon, Little inferno, Unmanned

    *9 January 2013 / Seoul*
    *published in 문화다 webzine*

    비디오 게임에서 텍스트, 즉 문자의 형태로 표현되는 것은 그래픽 이미지, 영상, 사운드 등과 함께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는 요소이다. 비디오 게임이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의 표현처럼 하나의 유려한 “체험 모델”을 만들어낼 때, 텍스트로 표현되는 요소는 종종 시스템의 불완전성을 드러내는 군더더기 혹은 스토리 진행 상의 사족과 같이 취급되곤 한다. 하지만 비디오 게임에서 텍스트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디지털 공간 속에 사유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텍스트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2012년에 인상적이었던 세 개의 인디 게임, ‘투 더 문(To the moon),’ ‘리틀 인페르노(Little inferno),’ ‘언맨드(Unmanned)’는 비디오 게임의 공간에서 텍스트가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역할을 보여주었다. 텍스트는 게임 세계 내에서 스토리의 진행을 이끌 뿐만 아니라 게임을 플레이 하는 행위를 지시하면서 게임이라는 매체 자체에 대하여 생각하도록 유도했다.

    *위의 순서대로 본문의 문단마다 각 게임의 스토리와 게임플레이에 대한 스포일이 있다. 이 글을 게임 플레이 전에 읽는다면 고유한 플레이 경험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플레이 시간은 각자 다르겠지만, 참고로 ‘투 더 문’은 4시간, ‘리틀 인페르노’는 4시간 반, ‘언맨드’는 1시간 정도 플레이 했다)

    734671_10151366268906251_1233890655_n[To the moon](http://freebirdgames.com/to_the_moon)

    프리버드 게임즈(Freebird Games)의 ‘투 더 문(To the moon)’은 지그문트 사무소에서 파견된 로잘린과 와츠 박스가 의뢰인인 조니 할아버지의 집으로 가면서 시작된다. 달로 가고 싶다는 조니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해 로잘린과 와츠는 그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과거를 조작하려고 한다. 플레이어는 함께 기억의 공간을 탐색하면서, 언제부터 조니가 달로 가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는지, 그것이 어떻게 좌절되었거나 잊혀져 왔는지, 왜 삶을 마감하는 시점에 그 꿈을 다시 이루고자 의뢰를 했는지 밝혀낸다. 우여곡절 끝에 로잘린과 와츠는 과거의 조니에게 달로 가고자 하는 꿈을 상기시키고 그의 의지를 자극시켜 기억을 바꾸는데 성공한다. 조니는 그가 보고자 했었던 장면을 목격하며 죽음을 맞는다.
    기억의 공간들을 이동하면서, 각각의 상황에 어떤 행위를 취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지가 플레이어에게 제시된다. 선택에 따라 이야기 전개나 결말이 크게 바뀌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선택지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선택지는 선택하는 행위를 반복하게 한다는 점에서 게임 플레이의 경험에 의미 있게 작용한다. 첩첩이 쌓여가는 그 선택의 행위들은 이야기가 깊어짐에 따라 여운을 남기면서, 만약 내가 그때 다른 답을 선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선택지를 통해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투 더 문’이 이야기하는 바이기도 하다. 나아가 이야기의 중요한 갈림길로 되돌아가 선택하지 않았던 혹은 포기했던 길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게임 플레이의 고유한 특성 중의 하나이다. 게임 플레이에서 두 번째 경험은 첫 번째 경험과 동등한 의미가 있다.
    ‘투 더 문’은 스토리 진행상 플레이어의 개입이 적은 대신, 3인칭 시점으로 보이는 캐릭터들의 대화가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와츠의 실없는 농담과 이를 맞받아치는 로잘린의 대사는 완벽한 콤비를 이루며 읽는 재미를 준다. 그들의 만담은 마지막까지 계속되는데, 그때쯤 되면 두 캐릭터를 다시 보게 된다. 죽음을 눈 앞에 둔 사람에게 그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경험하도록 해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허구를 시뮬레이션해주는 두 캐릭터는 허구를 현실처럼 무겁게 여긴다. 허상을 또 다른 실재라 믿고 생의 농담을 던질 수 있는 단단한 존재들이다.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고 했지만 정말 그럴까? 조니는 소망을 이루고 지구를 떠났다.

    75019_10151366269526251_906137611_n[Little inferno](http://tomorrowcorporation.com/Littleinferno)

    투모로우 코퍼레이션(Tomorrow Corporation)의 ‘리틀 인페르노(Little inferno)’는 리틀 인페르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공한 벽난로를 구매해줘서 고맙다는 미스 낸시의 편지로 시작된다. 미스 낸시는 이 놀이에 목표도 순위도 실패도 없을 것임을 강조하면서 그냥 멋진 불꽃을 만들면서 즐기라고 전한다. 그리고 슬쩍 덧붙인다. 유희가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플레이어의 눈 앞에는 작은 벽난로와 불을 지를 수 있는 아기자기하고 판타스틱한 아이템들이 있다. 아이템을 태워버리면 돈이 남고 그 돈으로 또 다른 아이템을 사서 태울 수 있다. 이 단순한 놀이는 무척 매력적인데, 다양한 아이템들을 늘어놓고 함께 태우면 예상치 못한 효과들도 볼 수 있다. 특정한 콤보를 완성해서 효과를 즐기느라 물건을 정신 없이 사다 보면 제한된 개수를 넘기고 “Sorry, I got too excited” 라는 버튼을 멋쩍게 누르게 된다.
    그렇게 불장난에 열중하고 있는 나에게 한 소녀가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로 인해 내가 사실 어떤 피치 못할 상황에 처해있는 것임을 알게 된다. 소녀와 나는 벽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찬 바람이 밀려들어오는 굴뚝 밑에서 태울 수 있는 모든 것을 태워 온기를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은 환상적인 장난감들 앞에서 군더더기 같은 상황설명일 뿐이다. 소녀의 편지가 게임 플레이에 유용한 정보대신 시답잖은 내용들로 반복되면 플레이를 방해하는 요소로 인지하게 되고, 점점 대충 읽고 태워버리게 된다. 자신이 여기 있다며 갑자기 소녀가 벽을 두드릴 때는 섬찟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내가 그녀의 생사보다 불놀이에 집중해있기 때문이다. 왠지 모를 불안감은 들어맞고, 소녀는 불놀이로 자신의 집을 태워버린 후 사라진다.
    가끔씩 날씨 속보를 담은 편지도 벽난로 앞으로 도착한다. 소식에 의하면 바깥 세상은 끊임없이 내리는 눈에 덮여 얼어붙고 있다. 나 역시 불장난 끝에 집을 홀랑 태워먹은 후 거리로 나섰을 때, 이제껏 플레이 해온 소년 캐릭터의 모습을 3인칭 시점으로 보게 된다. 편지를 배달해준 우체부의 모습도, 얼어버린 도시에 선 희망 없는 사람들도. 이것은 놀랄만한 반전은 아니다. 바깥 세계로부터 왔던 편지들 속에 단서는 충분했다. 이 불장난은 바깥 세계로부터 도달하는 소식을 태우면서 지속되는 놀이였다. 또한 나의 모든 것을 소진해야 현실로 나올 수 있는 놀이이기도 했다. 엔딩을 본 플레이어라면 ‘리틀 인페르노’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할 것이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소년이 탑승한 현실이 다시 환상적인 유희의 세계로 가는 견인차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542181_10151366270071251_11576198_n[Unmanned](http://unmanned.molleindustria.org)

    몰레인더스트리아(Molleindustria)는 특정한 사회적 상황을 게임의 시스템으로 구현하여, 게임 플레이를 통해 상황의 이면에 깔려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있어 독보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규칙에 기반한 재현과 상호작용을 통해 설득의 기술을 보여줄 수 있다고 주창하는 이안 보고스트(Ian Bogost)의 설득적 게임(persuasive games)에 가장 좋은 예시이기도 하다. 몰레인더스트리아의 2012년 작 ‘언맨드(Unmanned)’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지만, ‘McDonald’s Video Game’이나 ‘Every day the same dream’과 같은 기존의 게임과는 다소 다른 플레이 방식을 보여준다.
    ‘언맨드’에서는 잠재적인 테러 위협에 대한 업무를 수행하는 어느 무인기 조종사(drone pilot)의 일상이 분리된 화면으로 펼쳐진다. 분리된 프레임에는 그래픽 이미지와 텍스트가 각각 제시되며, 주어진 행위를 어떻게 수행했는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어떻게 선택했는가에 따라 배지가 주어진다. 예를 들어, 오른쪽 프레임에 위치한 캐릭터의 얼굴에 면도칼을 가져가 조심스럽게 면도를 하는 동시에 왼쪽 프레임에 뜨는 그의 내면적 질문에 대해서 선택을 해야 한다. 면도를 하는 행위에 집중하지 않으면 얼굴에 상처가 나는데, 그렇다고 텍스트를 대충 클릭해서 진행해 버리면 캐릭터는 충분히 생각을 발전시키지 못하게 되고 그 장면은 보상 없이 종료된다. 자가용을 운전하거나, 무인기를 조종해서 정찰하거나, 담배를 피우는 일상의 행위를 무리 없이 진행하되, 행위들 틈새로 끼어드는 대화나 생각의 단초들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플레잉의 요지이다. 특히 집으로 퇴근한 조종사가 아들과 FPS 게임을 하는 장면에서는 게임 화면을 그대로 차용해 게임을 플레이 하는 행위도 돌아보게 만든다. 가장 강력한 몰입의 매체인 게임에서 게임의 프레임 바깥을 보라고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플레이 할 때는 거추장스러운 텍스트들을 대충 넘겨버리지만 다시 플레이 할 때는 이 게임의 유일한 보상인 배지를 받기 위해 텍스트를 유심히 읽어 내려가게 된다. 무의식적,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행위를 완수하면서도 우리는 반성과 성찰을 지속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더 생각을 깊이 이어갈 수 있을까를 게임의 미션으로서 고민하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게임 스토리텔링을 효과적으로 구현해주는 기술들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그것은 주로 그래픽 영상을 강화해 나간다. 그와 더불어 게임 공간의 텍스트에 대한 실험들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2012년에 많은 관심과 호평을 받았던 ‘투 더 문,’ ‘리틀 인페르노,’ ‘언맨드’는 비디오 게임의 공간 안에서 쓰이는 텍스트의 가능성을 탐구하기에 좋은 출발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세 게임의 텍스트들은 게임 안에서 메타-게임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앞으로 어떤 새로운 시도들이 나오게 될까 기대가 된다.